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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9 20:35 수정 : 2014.11.20 10:17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우거진 숲이 자라난 이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알려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그 속에 있는 도시 산페드로에 들어가는 길에 택시 운전기사는 잠시 쉬어가자면서 숲 옆에 차를 세웠다. 나무의자가 몇 개 있었고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었으며 과자 봉지가 보였다. 오아시스가 아니라서 샘은 없었다. 난데없이 땅속에서 솟아난 듯한 숲이 거기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옌데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숲이다.”

통역을 겸한 여행 코디네이터를 통해 돌아온 대답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좌파연합세력의 대통령 후보로서 36.62퍼센트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돼 남미 최초의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인물이다. 아옌데 정권 3년 동안 칠레 경제는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주요 기업과 은행 등에 대한 국유화 조치는 국가와 민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구리 등 칠레의 핵심 자원을 내준 미국이 경제제재와 내정간섭으로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시아이에이(CIA)를 통해 반(反)아옌데 공작을 실시했고, 생활필수품과 공산품 원조를 중단해 여론을 분열시켰다. 특히 군부와 접촉해 쿠데타를 직간접적으로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에 아옌데 정권은 경공업 확충, 식량 자급 등 풀뿌리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통해 생존투쟁에 나섰다. 그런 사업의 일환으로 연평균 강수량이 8㎜밖에 되지 않는 아타카마 사막에 나무를 심게 된 것이었다. 1973년 9월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참모총장이 이끄는 칠레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대통령궁은 공군 비행기의 폭격을 받았고 총을 직접 손에 쥔 아옌데 대통령은 사망했다.

‘아옌데의 숲’은
서늘한 그늘과 공기 품고 서서
황량한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칠레 국민 여러분, 이 연설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연설입니다. (…) 우리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 본인은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누군가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여, 영원하라!”

쿠데타군에 장악되지 않은 라디오에서의 마지막 방송 이후 아옌데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타카마 사막의 나무들은 물을 주는 사람이 없자 뿌리를 땅속으로 더욱 깊이 뻗어갔다. 많은 나무가 말라죽었지만 살아남은 것도 있었다. 그게 숲이 되었다.

‘아옌데의 숲’은 서늘한 그늘과 공기를 품고 서서 황량한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지하 수백 미터까지 뻗어 있을 거라고 운전기사는 말했다.

인구 3천 명 정도인 산페드로는 안데스 산맥의 허리를 뚫고 나온 물로 만들어진 오아시스 도시다. 흙에 풀을 섞어 세운 흙담과 흙집들이 즐비했고 수많은 배낭여행자들이 활기차게 오갔다. 검둥개들이 많았는데 순둥이라서 커다란 꼬리를 흔들며 따라와도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작열하는 태양과 마주 서야 했다. 땅은 바위처럼 딱딱하고 공기는 메말랐다. 그렇게 사람 살기 힘든 곳에서 수천년 전 사람들이 살던 동굴(너무 얕고 작아서 구멍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이 발견됐다. 사냥과 채집에 소용되는 도구들과 그릇이 같이 있었고 자그마한 체구의 사람 뼈도 있었다. 그 동굴 속에서 사람들은 먹고 자고 부부싸움도 하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 거두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적자(適者)였다.

안데스 산맥에서 분출한 물은 개울을 이루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개울 양쪽으로 무성하게 서 있는 미루나무가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고 있었다. 노랗고 푸른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떨거렁떨거렁” 하고 나귀의 목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냈다. 기시감이 느껴지며 전율이 지나갔다. 그 순간만은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은 정말 어린 시절 내 고향과 빼닮았다.

물은 흘러 흘러 도시를 적시고 도시 하수를 돌려받은 뒤에 어디엔가에서 땅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인적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살얼음처럼 소금기가 허옇게 낀 염호(鹽湖)에는 홍학들이 진을 치다시피 서서 먹이를 섭취하고 있었다. 염호의 물은 바닷물의 몇 배는 되게 짜디짠데 홍학은 연신 물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염호 속에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새우인지 게인지 하는 갑각류가 산다고 했다. 홍학의 먹이는 바로 그 작은 갑각류였다.

홍학은 금슬이 좋아서 한번 짝을 지으면 어느 한쪽이 죽기까지 같이 산다고 한다. 안내인에 따르면 홍학의 둥지에 있는 알을 ‘전문적’으로 훔쳐 먹는 여우가 있어서 홍학의 개체수가 조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여우의 개체수는 누가 조절하느냐고 물었지만 혼잣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런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없어서 안내인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 따지고 묻느니 혼자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결론은 홍학이 알을 낳지 않거나 여우가 훔치지 못할 곳에 알을 잘 숨겨 놓음으로써 여우의 숫자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염호 주변에 풀도 있고 풀벌레도 있었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비는 거의 오지 않지만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에 섞인 수증기가 새벽에 이슬로 응결해서 풀이 자랄 수 있다. 그 풀을 곤충이 먹고 곤충을 누군가 먹고 하는 식의 먹이사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밤이 되자 도시는 낮보다 더 활기가 넘쳤다. 수십 군데의 카페에서 음식과 술을 팔고 있었다. 밴드가 연주를 하고 손님들은 삭막한 사막에서 살아 있는 생명의 기쁨, 흥분을 보여주는 춤을 추었다. 좋은 자리인 줄 알고 밴드 가까운 자리에 앉았더니 밴드 멤버인 드러머가 잠깐 쉬는 틈에 다가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면 내가 아는 천국으로 갑시다.” 우리 일행 중 스페인어가 통하는 여성 코디네이터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당신은 이제까지 내가 만난 여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하자마자 무대로 뛰어올라가야 했다.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카페에서 (도망쳐) 나온 뒤 비교적 조용한 음식점에서 와인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데 앞서의 드러머가 다시 나타났다. 자신의 오늘 스케줄이 끝났다고 어서 천국으로 함께 가자고 재촉했다. 코디네이터가 무서워해서 계산을 마치고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숙소를 찾으려니 비슷비슷하게 생긴 흙집이 많아서 흙담 사이를 꽤나 헤맸다. 골목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이미 어떤 여성들과 함께였는데 그들을 버려두고 다가와 자신의 집으로 가자, 멋진 술과 음악이 기다린다고 열정적으로 역설했다. 다시 도망을 쳤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여기 있다!”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라 그런지 뛰면서 말을 하면 금방 숨이 차올랐다. 숙소 앞마당에 있는 나무 의자에 쓰러져 누웠다. 무심코 위를 바라보자 허공에 수많은 안개꽃이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안개꽃은 은하였고 수많은 꽃망울 하나하나가 별이었다.

우리 은하에는 천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고 한다. 그 안개꽃의 씨는 누가 뿌렸을까.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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