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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6 20:25 수정 : 2014.11.30 22:42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강화도 갯벌 낚시의 포만감, 아름다운 단풍 속에 낙조를 바라보며 ‘복 총량 불변의 법칙’을 생각하다

강화도의 갯벌은 세계 4대 갯벌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강화도 남쪽의 동막해수욕장에서 서쪽의 화도면 장화리에 이르는 갯벌은 크기도 크기지만 서쪽 바닷가는 낙조로 유명하다.

수평선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해가 보여주는 찬란한 풍경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다만 오래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인생과 연관된 무엇인가를 연상시키며 힘을 빠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매일 뜨고 지는 해는 저렇게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하는 일이 많은데 나는 한 것도 이룬 것도 없이 몇 날을 살았던고’ 하는 식으로 낙천적인 천성에 칼질을 해대는 문장을 머릿속에 생성시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잠재우는 약이 없을 리 없다. 하늘은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법이니까. 약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몇년 전 가을, 다섯 사람이 승용차 한 대에 타고 강화도 서쪽의 갯벌을 찾았다. 낙조를 보려면 아직 몇 시간은 기다려야 할 이른 시간이었다. 갯벌에서 직접 물고기를 잡고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먹을 수 있다고 해서였다.

강화도 서쪽 어느 마을, 장대한 갯벌이 들판처럼 펼쳐진 곳에 도착하자 그날 하루의 고기잡이, ‘회 떠먹기’를 인도해줄 남자가 길가의 벽돌집에서 나왔다. 일단 잘생겼다. 그는 자신이 근처에서 몇 안 되는 어부라고 했다. 바닷가 마을 사람이라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보통이고 마을에는 어촌계 같은 게 있어 공동으로 어로작업을 하게 마련인데 어부가 몇 없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바다와 갯벌에서는 해조류, 패류, 어류, 갑각류 등 다양하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수산물을 수확할 수 있으므로 수산업법에 의거하여 어업권이라는 특별한 권리가 인정된다. 어업권은 경매 대상이 되기도 하는 값나가는 재산권(물권)이다. 수십년 전만 해도 그 마을의 사람들 대부분이 어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이 북한과 가깝고 해상침투가 우려된다는 국방상의 이유로 하나씩 둘씩 어업권을 나라에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젊었던 남자는 어업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넘기지도 않았다. 그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 집에서 자신이 어릴 때부터 보고 익혀온 고기잡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다 팔아서 살아가기에는 힘이 들어서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외지인 손님들로 하여금 갯벌에서 물고기를 직접 잡고 그 자리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체험 서비스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손님은 하루 한 번 단체로만 받았다. 우리 일행 다섯 사람에게 비용이 얼마가 들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한 분이 그런 곳이 있다고 알려주고 자신의 차에 태우고 갔으며 예약을 하면서 계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날의 공덕으로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생겼을 것이다.

그물 가운데 오십여 마리의
작고 특이한 종류가 있었다
이름을 물으니 졸복이라 했다
배를 간질이면 부풀리면서
‘복복’ 소리를 냈다

남자는 손님들에게 장화를 주고 갯벌의 흙탕물이 옷에 튀지 않도록 우비를 걸치게 한 뒤 바퀴가 커다란 농기계에 설치한 짐칸에 태웠다. 느리고 엔진 소리가 요란하긴 했지만 푹푹 빠지는 갯벌을 달리는 데는 그만이었다. 사람 말고도 회에 곁들이는 상추와 초장, 마늘, 고추 같은 것을 담은 플라스틱 함지, 술과 음료수, 회를 쳐서 먹고 마시는 데 필요한 칼, 도마, 접시 같은 도구까지 자리가 복잡하게 실었다.

이십여 분쯤 달렸을까. 갯벌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쳐진 그물이 나타났다. 어업권 가운데 하나인 ‘일정한 수면에 어구를 정치(定置)하여 수산동물을 포획하는 어업’의 형태였다. 하루 한 번 그물을 치고 걷는데 손님들은 그 그물 속에 든 모든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었다. 먹다 남으면 가져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운이 없으면 고기를 많이 못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물고기가 먹기에 부족하지 않을 듯했다. 손님들의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은 것 같았다. 몇 달치 예약이 차 있다는 게 반증이었다.

고기가 많이 모여들 수 있는 목을 찾아서 갯벌에 나뭇가지를 박고 그물을 쳐두면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물고기들이 걸려든다. 그물은 긴 자루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바닷물과 함께 들어온 물고기만 안에 남고 물은 그물 사이로 흘러나간다. 한 번 그물망에 들어온 물고기는 후진을 하지 못해 그물 안쪽에 몰려 있다가 잡히게 마련이었다.

고기가 살찌는 가을이라 그런지 그날 잡힌 물고기들은 씨알이 제법 굵었다. 강화도 바닷가에서는 숭어, 농어, 병어, 밴댕이, 망둥이 등등이 사철 많이 잡힌다는데 때가 때인지라 전어가 열몇 마리쯤 있었다. 큰 물고기는 회를 쳐서 먹고 전어는 석쇠와 휴대용 가스버너를 가지고 구워 먹었다. 물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맛을 잘 모르는 내게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회가 맛있고 싱싱했다. 전어 역시 정수리에서 감응할 정도로 고소한 맛이 났다.

그런데 그물에 들어 있는 물고기 가운데 가장 작고 오십여 마리는 될 특이한 종류가 있었다. 흰 배가 황금빛 햇살을 받아서 잠시나마 노다지처럼 누렇게 보였는데 이름을 물어보니 졸복이라 했다. 황갈색의 등에 짙은 갈색의 반점이 많고 배를 간질이면 부풀리면서 ‘복복’ 소리를 냈다. 못생겨도 귀여운 건 귀여운 법, 요걸 어떻게 잡아먹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복어는 내장에 맹독이 있으므로 취급 면허가 없는 사람은 아예 건드려서도 안 되는 것이라 해서 다른 물고기와 함께 양동이에 집어넣었다.

두어 시간 만에 배가 복어처럼 불러서 출발 장소로 돌아왔다. 매운탕이 준비되는 동안 마당에서 마리골드와 코스모스, 벌개미취가 심어진 꽃밭을 기웃거리다 보니 드디어 해가 질 기미가 보였다. 마니산 서쪽 산자락의 단풍이 다홍치마처럼 붉어졌고 햇빛 속에 적외선이 많아진 듯 닿는 곳마다 따스했다.

내가 언제 무슨 적선을 어떻게 하였기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가. 겸손해서가 아니라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는 것이 나중에 누릴 복을 미리 써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마다 누릴 복의 총량이 있고 그것을 균형적으로 잘 나눠 쓰는 게 잘 사는 것’이라는 ‘복 총량 불변의 법칙’을 한번 만들어볼까 싶기도 했다.

어부 부인의 음식 솜씨가 어부의 고기잡이 솜씨처럼 뛰어나 매운탕마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만들도록 맛있었다. 졸복과 남은 물고기를 아이스박스에 잘 담아주어서 차에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 시내의 유명한 복어 전문식당에 가서 그 많은 복어를 좀 큰 참복 네댓 마리와 바꿔 먹었다. 식당 주인은 복어요리 자격을 갖춘 조리사 출신이었다. 그는 졸복이 복어 가운데 가장 작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지만 큰 건 월척(越尺) 이상이라고 했다. 졸복은 우리나라 해안 어디에서고 흔히 나오고 복어 가운데 가장 값이 싸기도 하다.

졸복은 작다 보니 한 마리에 얇은 회 두세 점밖에 안 나오니 탕으로 먹는 게 제격이라고 했다. 잘 손질한 졸복으로 끓인 맑은탕이 나오자 복어를 많이 먹어본 단골손님들은 최고의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들었다. 내게 졸복탕은 ‘밥도둑’이 아니라 ‘술 강도’였다. 숙취 해소에 그만이라고 하니 또 하나의 ‘병 주고 약 주고’의 사례였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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