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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8 20:25 수정 : 2015.01.29 10:36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회를 못먹는 내 입에 병어회 쌈폭탄 투척했던 군대 동기, 그리고 빠져든 병어의 맛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니 서른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입사 후 첫 출장지로 부산, 경남 서부지역 일대의 사업장에 가게 되었다. 마산(현재의 창원)에는 연락이 되는 유일한 군대 동기가 있었다.

그와 나는 1980년대 초반,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만나 6주간 같은 중대, 소대, 분대, 내무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한 살 많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기들은 우리에게 반말을 했고 우리 역시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그러나 그와 나는 서로를 존대어로 불렀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문장의 종결어는 ‘하셨소’ ‘했지요’ 같은 것이었다.

호랑이 눈에 키가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거한이며 중대 기수와 퀭한 눈의 고문관이 붙어 다니는 꼴이니 동기들이 보기에 참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존칭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동기들은 아예 집단발작을 일으킬 것 같은 증상을 보였다.

“아니꼬우면 니들도 그렇게 해.”

그렇게 대답했으나 돌아온 것은 “이것들이 짝을 지어 미쳤나”라는 싸늘한 대꾸였다. 그렇게 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어떤 전우보다 더 진한 우정을 가지게 되었고 동기들의 질시와 탄압 속에서 존대어로 다져진 존경심은 평생을 가도 변치 않을 강력한 정서적 연대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훈련소 시절을 같이 보냈을 뿐 각자 아득히 서로 떨어진 지역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까지 한 번 만나지도 못한 채 편지만 여러 통 주고받았었다. 처음에 주소를 알려주려고 보낸 그의 누님의 편지도 정중한 문어체로 예절에서 터럭만큼의 어긋남이 없는 내용이어서 이게 집안 내력인가 보다 싶었다. 각자 전역을 하고 다니던 대학에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이라는 걸 하기까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상을 쉽게 망가뜨릴까 직접 만나는 것을 기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서울에 본부가 있는 국가유관기관에 취업을 해서 연수를 받으러 왔다고 알려온 것이 1987년쯤이었다. 본부가 서울 당산역 근처라고 해서 나가서 만났다. 그때도 우리는 예의와 존대어를 유지했고 우정과 존경 또한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내가 첫 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는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자주 연락을 주고받을 때였다. 가기 전에 사전에 연락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음식점, 숙박업소에 미리 예약을 다 해두었고 내가 거기에 와서 떠날 때까지를 책임지겠노라고 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반갑게 만난 우리는 마산항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 가운데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이층 목조건물로 들어갔다.

“여기서 뭘 먹는데?”

“횟집에서 회를 먹지. 내가 미리 다 주문해놨으니까 당신은 먹기만 하시오.”

“어, 그래요? 나는 이때까지 회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늘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던 그도 그때만은 당황한 눈치였다.

“회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왜? 고향이 물고기 구경 하기 힘든 내륙이라서?”

“아니, 내륙에도 물고기는 있지. 식성에 안 맞아서 안 먹은 거지.”

“안 먹었다면서 식성에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고?”

“어허, 이 양반이! 식성에 안 맞을 거 같으니까 미리 알고 안 먹는 거지.”

우리는 회가 먼저냐 식성이 먼저냐를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가 존대어를 하는 사이라는 걸 잊어버릴 뻔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푸짐한 회와 회에 부수되는 반찬이 밥상 가득히 나왔고 나는 회를 뺀 나머지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가 단호한 얼굴로 내 젓가락을 빼앗고는 주인을 불렀다.

“오늘 이 집에 들어온 거 중에 제일 싸고 흔한 물고기 있지예? 작든동 크든동.”

주인이 대답을 하고 나간 사이에 그는 그런 잡어는 회를 못 먹는 나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방학 때만 되면 자신이 만든(혹은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배에다 낚시와 초고추장, 도마와 칼을 싣고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돌아다녔고 오로지 낚시로 잡은 고기로 양식을 삼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연안 대부분의 물고기를 알고 있었다. 이윽고 잡어로 만든 회가 작은 접시에 날라져 왔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병어’라는 것이었다.

그의 커다란 손은
연신 상추를 집어올려
은회색 껍질이 빛나는 회와
초장, 간장, 마늘, 고추의
쌈회 폭탄을 만들어냈다
우정을 위해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위해 자신이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을 했다. 상추를 펴고 초장과 간장을 찍은 회를 그 위에 얹고 마늘과 고추, 된장 등속을 더해 쌈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고는 내 입을 벌리게 하더니 우정의 상추쌈을 내 입속에 욱여넣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회를 먹은 순간이었다. 상추와 양념의 맛이 너무 강해서 회 맛이 뭔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커다란 손은 연신 상추를 집어올려 은회색 껍질이 빛나는 회와 초장, 간장, 마늘, 고추의 쌈회 폭탄을 만들어냈다. 우정을 위해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처럼 점잖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그렇게 싫다는 사람에게 회를 먹이려던 이유 또한 우정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한 접시의 병어회를 다 먹고 난 뒤 나는 다시는 억지춘향 격으로 회를 먹을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나중에 내가 횟집에서 만난 한반도 바닷가 특정 지역 사람들은 내가 회를 잘 못 먹는다고 하면 좋아하기는커녕(모아놓은 음식에서 자신이 먹을 몫이 많아지면 좋아하는 게 진화된 영장류의 특징이다) 문명화하지 못한 야만인을 보듯 불쌍하게 여기든가 그 친구처럼 억지로 회를 먹이려 했다. 요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횟집에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회를 잘 먹는 척하는 사교술을 익혔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이전처럼 곡물과 채소를 위주로 한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을 유지했고 불가피한 경우에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을 약간 섭취하는 식생활을 계속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어둠의 농도가 짙어지던 초겨울 어느 토요일 저녁, 혼자 운동복 바람으로 동네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카바이드 불빛을 밝혀놓은 포장마차에서 40대 여주인이 음식을 손질하고 있었는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었다. 별생각 없이 포장마차의 작고 동그란 의자에 앉은 나는 막 주인이 손질을 하고 난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름이 뭔지 물었다.

“병어예요.”

머리칼에 전기가 오른 듯하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거 한 마리에 얼마나 하죠?”

두 마리가 천 원이었다. 소주 한 병에 천 원이었나. 난생처음 내 돈 내고 내 입으로 주문한 횟감은 포장마차에서 가장 값싼 물고기, 병어였다. 쌌기 때문에 곁들여주는 건 초고추장뿐이었다. 그래서 제맛을 볼 수 있었다. 고소하고 단맛이 나고 쫀득거리는 질감이었다. 소주 한 병과 병어 한 접시는 궁합이 잘 맞았다. 그 뒤부터 바람이 봄의 훈풍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거의 매일 저녁 병어를 먹었다.

“병어하고 무슨 원수가 졌어요?” 포장마차 여주인이 실제로 내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원수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친구 사이이며 큰 은혜를 입었다’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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