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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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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1000cc 생맥주잔 부딪치다 맥주잔이 세번 연속 깨져버렸던 어느날의 씁쓸한 맥주 맛
스무 살이 넘고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끌린 술은 생맥주였다. 상당수의 한국 남자들이 그렇듯 나 또한 어린 시절에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 들고 들에 내가는 심부름을 할 때 조금씩 맛본 게 음주의 시작이었다. 그때 그 막걸리는 생막걸리였다. ‘생’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술은 살균을 하지 않는다. 효모가 살아 있는 그 술맛을 어릴 때부터 알게 되었던 까닭에 성년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생맥주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병맥주와 생맥주는 살균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구별한다. 살균을 하는 건 오래도록 맥주가 변질하지 않도록 하고 먼 소비지까지 운반해서 판매하려는 목적이 있어서다. 생맥주는 효모의 맛이 살아 있는 대신 빠른 시간 내에 마셔야 한다. 또 잔을 공유하지 않는다(따라서 생맥주로는 폭탄주를 만들지 않는다). 오염되기 쉬워서다.
병맥주는 소주나 다른 술처럼 잔에 따라서 마셔야 하는데 누가 잔을 따르느냐, 얼마나 따르느냐, 언제 따르느냐, 어떻게 마시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된다. 장유유서를 유난히 강조하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이러한 술자리의 형식적인 절차가 주도(酒道)니 주법(酒法)이니 하는 근거가 불분명한 규율로 새로 진입한 사회구성원을 길들일 때 동원됐다. 주도, 주법이 있으면 음도, 음법, 식도, 식법도 있어야 하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美觸法)에 모두 법도가 있어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국내 유수의 생맥주 전문주점 체인을 개발하고 식단을 개발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맛있는 생맥주의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매뉴얼대로 하면 됩니다.”
살아 있는 술이므로 이상 발효, 부패, 오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맥주는 정해진 온도로 차갑게 유지하고 생맥주 디스펜서와 잔이 오염이 되지 않도록 청결하게 관리하며 특히 사용한 잔은 반드시 깨끗하게 씻고 완전히 말려서 다시 사용해야 한다.
그는 온도와 청결 유지에 실패한 사례로 프라이드치킨과 함께 생맥주를 팔던 프랜차이즈를 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점포를 내준 결과 영세한 곳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닭을 튀기느라 생맥주의 온도와 청결성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맛이 나빠지자 결국 손님들이 발길을 돌렸다. 새로운 생맥주 프랜차이즈를 설계하면서 메뉴를 차가운 안주 위주로 바꿨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표적인 안주가 ‘차가운 훈제족발’이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이 마실 양을 아예 따라서 가져다주는 생맥주는 병맥주보다 출발점부터 자유롭다. 한때 생맥주가 청바지와 통기타, 장발과 함께 자유로운 젊음을 상징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생맥주에는 싱싱하고 간편하고 민주적이고 값싸다는 여러 가지 미덕이 있지만, 무엇보다 맛이 있어서 좋다. 맛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맥주는 대개 ‘1만㏄ 봄베’에 담겨 생맥줏집으로 운반되고 냉각, 토출장치를 거쳐서 ‘조끼’(주둥이가 넓고 손잡이가 달린 큰 맥주잔을 뜻하는 저그에서 변형된 말)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생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20대 초반에는 ‘생맥주나 한잔할까?’ 하는 말보다는 ‘생맥주 한 조끼 할까?’라고 하는 편이 뭔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생맥주 조끼는 500㏄, 1000㏄로 나뉘고 재질은 유리, 주석, 도기 등이 있었지만 대개는 생맥주 공급 업체에서 생맥줏집에 무상으로 공급한 유리잔을 썼다. 나는 20대 때는 대장부의 호기를 보이기 위해서 무조건 1000㏄ 잔으로만 마셨다.
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우리는 순한 양처럼
살짝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찍” 소리도 없이 금이 가고
맥주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세월이 조금 지나서 삼십대 초반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맥주를 마실 때는 무조건 생맥주, 1000㏄ 잔으로 마셨다. 다니던 회사 앞에 좌석이 100석이 넘는 큰 생맥줏집이 있었다. 필리핀 가수들이 나와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곳이었다. 가수들은 공연이 끝나면 손님들이 앉은 자리를 돌며 달착지근한 팝송을 불러주고 팁을 받았다. 연인과 함께 있다면 모를까, 회사 동료들과 앉아 있던 나는 가수들이 옆으로 오는 게 영 거북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이 공연을 하는 동안 미리 취해 버리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생맥주를 1000㏄로 네 잔 주문했다. 미처 안주를 고르기도 전에 생맥주가 가득 담긴 잔이 운반돼 왔다. 동석하고 있던 우리 네 사람은(그중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였고 선배가 아닌 ‘아무개 형’으로 불렸고 그 대가로 계산을 자주 했다) 늘 하던 대로 “시간을 아끼자”면서 힘차게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그날따라 박력이 지나쳤는지 “짜그작” 하는 소리가 나면서 1ℓ짜리 맥주잔 네 개가 금이 가더니 쩍쩍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뉴턴의 제3법칙에 의해 네 잔 모두 예외가 없이. 우리는 놀란 메뚜기처럼 자리에서 달아났고 사막의 와디(건천)에 폭우가 쏟아진 듯 생맥주는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종업원이 대걸레를 들고 온다, 행주를 가지고 온다 하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생맥주 네 잔을 다시 주문하고(물론 1000㏄짜리로) 그 집에서 가장 비싼 안주를 두 가지 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생맥줏집에서는 생맥주를 주문하면 병맥주보다 빨리 갖다 주어야 한다는 복무규칙이라도 있는 것 같다. 금방 네 개의 생맥주잔을 한 사람이 들고 왔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생맥주잔을 다시 부딪쳤다. 이번에는 살살 부딪쳤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이 의견 통일을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짤깍” 하는 야무진 소리가 나더니 다시 생맥주의 폭포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다시 종업원들이 달려왔고 착한 후배 하나는 양동이와 쓰레받기를 찾아가지고 왔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서 나는 다시 한 번 생맥주 네 잔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속죄하는 의미에서라도 1000㏄를 단숨에 다 마셔버리자고 일행에게 다짐했다. 이번에는 생맥줏집 주인이 직접 생맥주를 가지고 왔다. 비싼 안주도 함께 날라져 왔다. 그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순한 양처럼 살짝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 사람이 들고 있던 잔에 “찍” 소리도 없이 금이 갔고 맥주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맥주를 한 모금도 마셔보지도 못한 채 이미 각자 2000㏄의 매출을 올려준 상태에서, “아저씨, 여기 생맥주 2000 더요!”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생맥줏집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1000㏄짜리 생맥주잔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500㏄ 잔으로 마시든지 병맥주를 마시라고 했다. 모든 손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필리핀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웃고 있었는데 고향에 돌아가서 해줄 이야기가 생겨서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주인이 괘씸하기도 해서 딴 데 가서 마시자고 후배들을 데리고 나왔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술값을 억만금이나 치르고서. 결국 그게 1000㏄짜리 잔으로 생맥주를 마셔본 마지막 기록이 되었다. 그날 다른 생맥줏집에 가서도 후배들은 1000㏄짜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집은 내가 계산할 리가 없으니까. 다들 500㏄ 잔으로 얌전하게 홀짝홀짝 마셨다. 참다 못해 병맥주를 주문해 난폭하게 500㏄ 잔에 따라서 마신 적이 있었지만 잔 부딪칠 상대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했다. 예나 지금이나 생막걸리는 여전히 잘 있다. 잔은 신경 안 써도 되고 잘 익고 숙취도 없는.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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