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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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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프랑스에서 만든 이메일 계정으로 날아온 백만장자 유혹의 서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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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는데
내가 수수료 일부를 부담하면
960만달러의 반을 나눠주겠다 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편지가 날아드는지 따져보았다. 재작년 여름부터다. 그때 처음 만든 이메일 계정으로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새 이메일 계정을 만든 곳은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였다. 마르세유는 아프리카로부터의 보트피플, 중동의 원유 관련 사업자들, 지중해를 건너온 화물운송업자들, 지네딘 지단 같은 프로 스포츠 스타, 나처럼 기차를 타고 혼자 무턱대고 아무 데나 기약없이 돌아다니는 인간들로 복잡했다. 기왕 마르세유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부야베스나 먹고 가야겠다 싶었다. 버스를 타고 막상 바닷가 ‘먹자골목’에 가니 부야베스를 파는 곳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중국, 일본, 타이, 인도, 터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음식점만 보였다. 몇 번을 왔다갔다하며 고르던 끝에 내가 선택한 음식은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을 파스타였다. 파스타를 먹고 난 뒤 반성을 겸해 지중해 바닷가에 붙어 있는 비스트로에서 생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앉았다. 공짜로 와이파이가 된다 해서 연결했고 이메일에 잔뜩 스팸메일이 들어와 있는 것에 짜증이 난데다 시간도 많고 사이버 우주에서나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볼 겸 해서 새 계정을 만들었다. 새 계정으로 맨 먼저 한 일은 인근의 호텔을 예약한 것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저렴한 곳이었다. 호텔 접수대의 종업원 세 사람의 피부색이 다 달랐다. 방안 눈에 잘 띄는 곳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여행사 사이트에 접속해서 새 이메일 계정으로 회원에 가입했다. 눈부시게 흰 시트에 앉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추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내는 창밖을 내다보며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었다. 그곳은 알프스산맥 아래에 있는 도시 안시(Annecy)였다. 안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35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15세기에 사보이공국의 영토가 되었던 적이 있으며 겨울에 눈이 많은 산악도시다. 내가 그곳에 가려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때맞춰 북아프리카에서 내습한 고온기단 때문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알프스산맥 아래에 가면 좀 시원할까 해서였다. 다음날 마르세유에서 리옹까지 초고속 열차로 이동했고 리옹에서 안시까지는 버스를 탔다. 언제부터인가 알프스산맥으로 보이는 산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안시에 내리자 확실히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호수를 끼고 있는 안시는 인형이 사는 도시처럼 작고 아름다웠다.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객에게 고적하다는 느낌을 줄 만큼 깨끗하고 안전해 보였다. 일인용 호텔방은 내가 외국에서 묵어본 어떤 호텔방보다 작았다. 침대와 화장실 사이의 거리는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였다. 화장실 문은 사람이 안에 들어 있다면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해가 넘어갈 때가 된 듯해서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섰다. 호텔에서 호수로 가기 위해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자전거를 탄 무리가 번개처럼 홱 하고 지나갔다. 얼핏 보기에도 헬멧과 고글에 복장까지 제대로 차려입은 것 같았다. 그 녀석들, 자전거 제법 탈 줄 아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투르 드 프랑스’ 자전거 경주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안시를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날 호텔 근처의 자전거 가게에서 한국 기준으로 보면 ‘유사 엠티비(MTB) 자전거’에 해당하는 중후하고 튼튼한 자전거를 빌렸다. 안시 호수를 한 바퀴 유유히 돌 작정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나를 가볍게 추월해 갔다. 자전거가 좋고 엔진이 좋고 연애하느라 바쁠 테니 그러려니 했다. 4분의 1쯤 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나보다 스무 살은 많을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나를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중고생들이 죽어라 페달을 밟고 있는 나를 따라왔다. 나를 추월한 아이들은 자전거에 탄 채로 샌드위치를 먹고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신을 보내고 음악을 듣고 감상을 이야기하고 사귀고 헤어지고… 사교와 공부, 취미생활, 살림을 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게 다 자전거 탓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도 매일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었다. 투르 드 프랑스 대회 때문에 엄청난 자극을 받아서였을 것이다. 한 가지 교훈을 얻긴 했다. 어차피 질 상대라면 그 상대를 가장 센 사람으로 고르는 게 지고 나서도 덜 창피하다는 것. 호텔에서 줄곧 알프스산맥 어디에 있는 투르 드 프랑스의 다음 코스를 찾다가, 프랑스어권에 속하는 북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누군가 보낸 이메일이 도착하는 바람에 제정신을 차렸다. 편지는 “긴급한 용건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보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발신인의 남편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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