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06 19:01
수정 : 2014.08.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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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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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냉면’이라는 노래의 후렴이다. 어려서 우리는 라디오 시대였다. ‘마루치 아라치’와 ‘광복 삼십년’을 들으며 자랐다. 여름이 되면 냉면 노래가 나왔는데, 정작 실제 냉면 맛보다 노래 가사로 냉면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여름에 골목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도 빙수도 아니고 냉면 노래라니. 식품사학자였던 고 이성우 한양대 교수의 책을 보니 그 시기에는 ‘냉면10소’라는 우스개도 있었다.(책에 나온 표기대로 옮김) 1. 냉면 한 그릇 주소 2. 빨리 주소 3. 육수국 빨리 주소 4. 아지노모도 가루 좀 주소 5. 계자(겨자) 좀 주소 6. 사리 한 개 주소(다 먹고는) 7. 사발 냉수 한 그릇 주소 8. 이쑤시개 주소 9. 국수 값은 달아주소(외상이라는 뜻) 10. 마지막 ‘소’는 빼소(이건 주인이 화가 나서 하는 말). 돈 없이 허세만 부리던 빈대떡 신사가 생각난다. 이 유머에서 오래전 냉면 먹는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역시 그 시절에 이미 빨리빨리 문화가 있었고, 아지노모토(MSG의 대표 상품명)를 뿌렸다. 요즘처럼 음지에서 쉬쉬하지 않고 대놓고 청하고 주는 때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리를 추가하는 대식가도 많았고, 요즘과 다르다면 외상 문화다. 요즘은 신용카드로 외상을 하니까 말이다. 냉면 한 그릇 값이 드디어 1만3000원에 다다른 모양이어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뒷공론이 있다.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냉면 육수의 충격적인 제조 과정을 폭로하면서 냉면 값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조미료와 설탕으로 만드는 육수에 왜 그리 비싼 값을 받느냐는 항의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고깃집 등에서 입가심으로 싸게 파는 메뉴에 국한될 뿐, 가업을 걸고 하는 집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유명 냉면집 몇몇의 부엌에 실제 들어가서 보니, 재료비가 어지간히 나간다. 소고기 삶는 양이 어마어마하고, 무엇보다 메밀도 값이 천정부지다. 수입 메밀도 결코 싸지 않다. 밀가루의 열배에서 스무배 정도 값이 나가니, 원가는 짐작이 된다.(메밀 함량도 낮게 쓰면서 비싸게 받는다면 물론 문제가 있다.) 조미료 넣은 닭 파우더에 깡통 소스로 만드는 파스타도 2만원씩 받는 경우도 흔한데 말이다. 굳이 옛날얘기를 하자면, 냉면은 서민 음식도 아니었다. 벼르고 별러야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 밀면이 탄생한 역사를 보면 참고가 된다.(메밀을 쓰는 고급 냉면의 대체재로 시작된 것이 밀면이다.)
시내 고급 냉면집에 못 가면, 빨간색 휘장으로 ‘냉면 개시’라고 쓴 동네 식당에 가서 먹었다. 조미료와 설탕으로 만든 육수(?)에 토마토와 커다랗게 부순 얼음덩어리를 넣어 주던 냉면이었다. 식당집 친구네 놀러 갔더니 여름 대목 전에 기계 면을 산처럼 쌓아놓고 그걸 손으로 비벼서 뭉친 사리를 풀던 모습이 생각난다. 땀을 비지처럼 흘리면서. 그 시절, 냉면 말고 시원한 위로가 또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에어컨도 없고, 털털 돌아가는 선풍기가 고작이었던 때였으니. 더위는 쫓는 게 아니라 견디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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