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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6 19:24 수정 : 2016.11.17 08:49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맛본 모리국수. 박찬일 제공

어려서 기억나는 한 장면. 엄마가 저녁 준비를 마쳤다. 밖에서 놀던 작은 누이를 불러오라고 하셨다. 나는 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누나, 엄마가 우동국수 먹으래.” 엄마에게 매를 맞았다. 끼닛거리 모자라 우동국수 먹는 걸 동네방네 소문냈다는 거였다. 진실을 말하면 원래 역풍을 맞는 법이다. 우동국수란 우리가 아는 그런 국수가 아니다. 소면과 같은 반죽이되, 넓적한 우동 면처럼 만들었다.

충남 예산의 옛날식 제면소인 ‘쌍송국수’에 갔더니 같은 면이 있었다. 반가웠지만, 사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아서다. 가는 국수, 즉 소면이나 중면은 맛있는데 왜 우동국수는 그렇게 싫었을까. 우선 이 국수로는 별미인 비빔국수를 만들지 않는다. 대개 신 김치를 넣고 푹 끓이는 용도다. 그야말로 끼니를 해치울 때 엄마가 삶았다. 걸쭉한 국물에 풀린 넙데데한 면에서 밀가루 냄새가 나서 싫었다.

경북 포항 구룡포에 가서 이 국수와 조우했다. 한 모리국수(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포항의 해물칼국수·사진)집에 갔더니 가게 한쪽에 박스째 쌓여 있다. 국수를 바꿔 넣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어 참았다. 정작 한 냄비 나온 걸 보니, 우동국수가 잘 어울렸다. 그래, 걸쭉한 국물에 옛 정취로는 이 국수만한 게 없어 보였다. 모리국수는 ‘까꾸네’가 제일 잘나간다. 알기로, 두번째 생겨난 집인데 인기는 최고다. 한 오십년은 되었다. 구룡포 사람들은 외지인들이 이 음식 먹으러 일부러 구룡포를 찾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 대단한 음식도 아닌데, 이런 표정이다.

벌건 고춧가루를 왕창 뿌리고, 마늘을 잔뜩 넣은 국물이 아주 걸작이다. 찜을 하기에는 좀 작은 아귀로 국물을 내었다. 대중식당에서 쓰는 마법의 조미료도 좀 든 것 같다. 맛이 없을 리 없다. 모리란 뜻은 주인아주머니(할머니 급이시다)가 일러준다. “모두 모이가(모여서) 먹는 국수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단돈 6천원,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

후룩후룩, 손님들은 고개를 박고 국수를 먹는다. 이미 한 테이블은 연세 지긋한 동네 할아버지들 차지다. 은퇴한 어부들 같다. 뜨거운 국물에 얼큰한 양념이 추운 겨울에 제격이다. 이 국수는 전형적인 노동음식이었다. 일 나갔던 어부들이 부두에 돌아와서 사 먹었다. 막걸리 한잔에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끓인 모리국수를 훌훌 마시고 허기를 덜어냈다.

구룡포는 한때 유명한 어업 전진기지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오랫동안 청어와 정어리를 잡는 배들이 빼곡했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잡은 정어리를 가져갔다. 비료로 쓰거나 전쟁물자로 썼다. 통조림을 만들어 전선에 보내고, 기름에서 글리세린을 추출해서 화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구룡포 부두 바로 뒤에 그 일본인들이 만든 동네가 복원되어 있다. 요즘 정어리는 거의 안 잡힌다. 꽁치도 귀하다. 서민 생선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대신 청어는 잘 잡히는 편이다. 최근 구룡포에는 이 동네의 상징이 된 과메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제법 실하게 꾸며놓았다. 모리국수 한 그릇으로 추위를 걷어내고 천천히 일본인 거리와 부두를 돌아 박물관까지 구경하면 좋은 여행코스다. 아 참, 해풍에 말리는 국수로 전설적인 명성을 얻은 ‘제일국수공장’도 가깝다. 공급이 달려 1인당 딱 두 개씩만 파는 이 국수의 맛은 중언할 필요 없다.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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