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균 /서울대 교수·한국사
① 헌정사적 의미 ② 진보개혁과 민심 ③ 새로운 길찾기 ④ 역사의 진보 |
5·31 지방선거와 진보개혁의 미래
5·31 선거는 지난 50년 동안 확대된 진보와 개혁이 이제는 힘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시대를 잘못 읽는다면 그것은 결코 ‘진보’일 수 없다. 5·31 선거를 둘러싸고 다양한 평가와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좀더 긴 안목으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엄청난 ‘민주화’를 거듭해 왔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점차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갔고, 정치·사회적인 면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급기야 민주화를 추동한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다. 불과 20·30여년 전 ‘막걸리 보안법’으로 신음했던 한국 사회를 회상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다. 돈과 공권력으로 정치를 주무르고, 남북관계의 위기를 이용해 정권을 연장하던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은 성숙했다. 이제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도도하게 흘러온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선거에서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는가? 1997년과 2002년 대선이 민주화, 개혁 세력의 성공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디제이피(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004년 총선 역시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종식됐음에도 분단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은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셋째, 냉전의 역사는 영원한 진보도, 영원한 보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산주의가 개혁과 변화를 내걸고 일부 국가에서 혁명에 성공한 것이 20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공산주의자들은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성공적으로 혁명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체제의 붕괴를 맞았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이들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보수’가 됐다. 문민정부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여망 위에서 출범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문민정부를 민주정부로 평가하기에 주저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나타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은 2006년 한국 사회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진보개혁 세력들의 노력에 의해 사회 개혁을 통한 민주적 시스템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이들이 국민 대다수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집권했던 민주화, 개혁 세력들은 시대 상황에 걸맞은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국 현대사의 경험은 몇 가지 중요한 암시를 준다. 1956년 대선에서 진보당 창당준비위원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조봉암은 23%에 이르는 득표를 했다. 그 뒤에는 ‘평화통일론’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던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국민에게 피부로 다가갈 수 있는 문제를 직접 건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당은 58년의 사건으로 총선거에 나가지도 못했으며, 59년 조봉암은 독재정권의 칼날을 맞았다. 23%의 득표와 50년대 세계적 차원의 중립국 동맹의 결성이라는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감히’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독재정권이 23%의 지지를 탄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4·19혁명으로 인해 진보세력들은 다시 정치무대에 등장했으나 이들은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사회안정과 함께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사실을 읽지 못했다.국민은 등을 돌렸다. 4·19혁명으로 조성된 분위기를 낙관하고 있었던 진보세력들은 군사정부에 의해 철퇴를 맞았다. 군사정부는 진보세력에 의한 사회혼란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국민들은 침묵했다.71년 대선의 성과에 낙관하던 민주화 세력들은 유신의 몽둥이를 맞았다. 서울의 봄은 신군부에 의해 무너졌고, 6월 민주항쟁의 성과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에 의해 완성되지 못했다. 고비마다 민주화 세력들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이것은 보수적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개혁 세력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는 것이었다. 5·31 선거 결과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고려할 때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50년 동안 확대된 진보와 개혁이 이제는 힘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두 번에 걸친 대선 승리를 통해 낙관론에 빠져 있었던 민주화, 개혁 세력들에게 경고를 던져 주었다. 시대를 잘못 읽는다면 그것은 결코 ‘진보’일 수 없으며,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없다는 경고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계개편을 운운하며 즉흥적인 득표율만을 계산한 정치적 꼼수를 내놓는 것은 이전의 민주화 세력들이 밟았던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웅’과 ‘지역’을 통해 득표하고자 했던, 그래서 그 ‘영웅’과 ‘지역’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됐던 상황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왜 개혁세력들의 일부가 보수 정당에 들어가야 했을까? 특정 ‘영웅’과 ‘지역’에 얽매이는 정당의 진보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과 ‘대안’을 준비할 때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한국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