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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8 18:40 수정 : 2006.07.18 18:40

안병진 교수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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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실효성 있고 북 ‘충격전략’ 계속될것

낯익은 패턴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많은 지식인들이 북한의 신중한 ‘위기관리’를 쉽게 예언하고, 이후 이를 비웃기나 하듯이 북한의 더 극단적인 행보가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다가 ‘그럭저럭’ 봉합이 이루어지고, 잊을만하면 다시 히스테리가 반복된다.

몇년간 지속된 이런 패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자신의 예측과 현실이 어긋나는 이유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겸허하게 공개하고, 더 발전된 이론을 만들려는 노력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이론이란 회색빛’에 불과하다는 괴테의 말이 진보든 보수든 너무 쉽게 잊혀지는 느낌이다. 다시 찾아온 이른바 ‘미사일 위기’를 보면서 자신의 회색빛 이념의 안경을 벗고, 다음의 4가지 회색빛 가설을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북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 흔히 중국 등의 미온적 행보로 대북 제재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해왔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기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기’ 전략을 결심했던 북한이 다시 위험스러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 것은, 역으로 대북 제재의 ‘잽 날리기’ 전략이 북한의 눈을 부어오르게 한 것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매우 당황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체제가 무너질 지경”이라는 천기누설(?)까지 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한번 건드려보는 심정으로 시작한 미국의 강경 보수파들은 김 위원장의 도움(?)으로 더욱 사활적으로, 더욱 창조적으로 대북 제재에 매달리며 정권교체의 계기를 기다릴 것이다.

미사일 위기는 정치적 위기이다?=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의 양자 담판을 위한 북한의 압박전술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정치적 시위이다. 하지만 대포동2로 미국의 목에 깊숙히 칼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군사적 위기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를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북-미 양자간의 필사적인 정세 인식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에서 나온다. 또, 앞으로의 정세 예측에서 오판을 반복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점진주의적 위기 상승 전략을 구사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할 때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야금야금 위기 수위를 올리는 합리적 행위자라고 지적했다. 일부는 미사일을 쏘아 협상력을 낮추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오판까지 했다. 이런 오판은 북한이 느끼는 엄청난 위기감과 선군정치의 핵심 정수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미국에서 돈키호테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전형이다. 그러나 피델 카스트로나 김 위원장에게 한번 물어보라. 돈키호테는 위대한 인민의 영웅이다. 앞으로도 북한은 절대로 ‘소프트파워’에 기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충격과 공포’의 전략이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카우보이 외교는 종료됐다?=미국의 〈타임〉은 부시 1기의 일방주의 외교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핵심 북한관이 변화한 것은 전혀 아니다. 미국 보수강경파와 자유주의자들 일부에게 북한은 과거 소련이나 이란과 같이 협상이 필요한 ‘강성대국’이 아니다. 오히려 쿠바처럼 인종주의적 혐오의 대상으로, 굴복시켜야 할 조무래기 집단일 뿐이다.

이런 4가지 회색빛 가설에 대한 의문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즉, 단기적 절충의 여부를 떠나 장기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위기를 더욱 위험한 수위로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획기적 해법은 없다. 다만, 다음의 4가지 기본 방향이 중요해 질 것이다.


첫째, 한국이 ‘비판적 균형자’로서 일관되면서도 섬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둘째, 현 위기의 핵심이 금융제재 공방이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봉합할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6자 회담에 복귀하는 즉시, 그리고 회담 기간 동안 금융제재 일시 유예 정도가 절충 카드가 될 것이다. 셋째, 한국과 미국 시민들의 햇볕정책에 대한 집단 무의식의 악화를 고려한 정교한 메시지 전략과 팀이 조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만 한정하지 않고 한국·미국·북한 민간 학자들의 공동 학술회의 등 다양한 전방위적 전환의 계기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압박’ 정치의 시대에서 ‘아트’ 정치란 성공하기 매우 어렵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안병진 교수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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