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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8 19:47 수정 : 2006.07.18 19:51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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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긴장이 조성되자, 죽은 유령들이 살아난다. 대북 포용정책이 공격의 대상이다. 비판은 정치적 증오에 기반하고 있다. 논리나 근거보다 이념이 앞선다. 대화와 협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북 좌파가 된다. 정치적 편견과 과도한 이념을 걷어내고, 포용정책을 다시 생각해 보자.

먼저,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와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 다수의 생각은 북한이 밉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북한은 모든 것을 걸고 벼랑끝 전술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정책 선택 환경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긴장이 고조되면 국가 신인도가 내려갈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의 심리도 불안해질 수 있다. 군사안보만큼이나 경제안보도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우리 사회의 합의다.

교류협력의 확대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교류협력이 확대되면, 북한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자연스러운 확산 과정을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능주의의 가정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정치적 협상으로 달성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탈냉전의 한반도 역사에서 교류협력의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실제로 보건의료 분야를 비롯하여,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다. 쌀과 비료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판하지만, 그것이 남북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중요한 협상 수단이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해결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동방정책을 ‘작은 발걸음’ 정책이라고 부른다. 교류협력의 성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와 경제를 연계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이미 역사에서 실패한 정책이다. 김영삼 정부는 핵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까지 경제협력을 제한하는 정책을 썼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북 관계는 ‘공백의 5년’으로 부를 만큼 아무런 진전도 없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사라졌다. 지금 문을 닫으면, 북한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우리는 통일 과정에서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채찍을 들라고 야단들이다. 한-미-일 공조에 나서라고 한다. 한-미-일 공조는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공조의 내용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조라면, 마달 이유가 없다. 이미 1999년 ‘페리 프로세스’를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세 나라는 협상을 위한 공조를 실현한 바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본 외교를 보면서도 한-일 공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말문이 막힌다. 협상의 문을 닫고 전쟁 공조로 나아가자는 주장에 대한민국 국민 누가 찬성할 수 있겠는가?

대화가 이루어질 때, 총성은 멎는다.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은 냉전의 신념과 다를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덕적 믿음이 아니라,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냉철한 이성이다. 지금은 감정적 화풀이를 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포용정책은 특정 정권의 산물이 아니다. ‘접촉을 통한 변화’ 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7·7선언 이후 일관되게 지켜온 대북정책 기조다. 탄력적 운용은 있을 수 있겠지만, 포용정책의 기조를 바꿀 수는 없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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