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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2 20:49 수정 : 2006.08.02 20:49

이숙진 한국보건복지 인력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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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안을 놓고 경제계는 ‘기업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하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차별 근절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한다. 그런가 하면 스무가지나 되는 차별금지 사유가 너무 많아서 비현실적이라는 신문기자의 지적도 있었다.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경제계·노동계·법조계·시민단체 등에서도 찬반양론이 떠들썩하다. 그런데 정작 장애, 임신, 다른 피부색, 용모, 그리고 학력 탓에 멸시와 불이익을 받아 온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들은 이런 법이 기업을 힘들게 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생각할까?

기업 활동이 가장 자유로운 나라는 아마도 자유시장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일 것이다. 그런 미국조차도 1965년에 이미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를 설치해, 고용 차별을 조정하고 법정 제소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91년에는 차별과 관련한 소송이 났을 때 차별이 아님을 입증하는 책임을 사용자에게 지웠으며, 더불어 사용자에게 ‘차별하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별이 도덕적으로 부당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에서 근거한다.

예를 들어, 여객기 승무원 모집에서 용모를 채용 기준으로 삼는 것이 차별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그들은 여객기 운항의 주요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려한다. 승객의 안전한 수송인가 아니면 손님에 대한 서비스 제공인가. 그들은 여러 판례를 통해 승객의 안전한 수송이 여객 운항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용모는 채용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어떠한가? 2001년 국내 한 항공사에서는 최종시험까지 어렵게 합격한 여성이 신체검사에서 임신한 사실이 밝혀져 합격이 취소된 사례가 있었다. 혼인 여부, 임신, 성별에 따른 차별이 중복된 사례다. 차별금지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때문에 차이와 차별을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키가 작아서 경찰에,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내원에도 지원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스무가지의 차별금지 사유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로 말미암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신한 여성 장애인에게는 성별·장애·혼인 여부·임신·가족상황이, 맞벌이 부부의 여성 우선해고의 경우 성별·가족상황·혼인 여부가 중복될 수 있다. ‘사각지대 없는 차별금지’를 주장해도 과도하지는 않으며, 점차 다양해지는 생활구조와 기술변화를 감안하면 스무가지는 불충분한 열거일 수도 있다.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노인 부양 부담 증가로 정년제 폐지, 연령차별 금지를 통해 어르신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하인스 워드 방문으로 혼혈인 차별금지도 사회적 이슈가 됐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안, 비정규직법안도 국회에 가 있는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는 건 이미 곳곳에 산재한 차별 유형들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 고용차별 금지는 경제적 인권보장의 핵심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초한 고용관행이 기업 경영에 효율적이었는가. 이번 기회에 그 답을 구하며 차별금지 법안의 내용을 숙고해 볼 일이다.

이숙진 한국보건복지 인력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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