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14 18:48 수정 : 2006.08.15 18:06

우치다 마사토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위원회 사무국장, 변호사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 전 30년에 걸친 의원 생활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서너차례 뿐이다. 야스쿠니 참배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그는 지금 자신의 참배 공약으로 자승자박이 돼 있다. 아니, 최근 그의 언동을 보면, 되레 야스쿠니 문제를 이용해 일본 내 배외주의를 부추기고, ‘중국·한국 등의 비판에 굴하지 않는 강한 지도자’라는 허상을 만들어내 구심력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수법은 우정민영화법 통과를 위해 저항세력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 것과 똑같다.

8·15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보도를 보면서 5월 유럽과의 차이를 절실히 느끼게 됐다. 지난해 5월8, 9일 2차대전 종전 60돌을 기념해 유럽에서 열린 여러 행사에는 전승국 정상들과 함께 패전국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있었다. 5월9일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50개 이상 나라와 국제기관의 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독일전 승리 60돌 식전에서 슈뢰더 총리는 ‘무명용사의 무덤’에 헌화했다. 전후 독일은 전쟁책임과 전쟁배상 등 역사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고, 프랑스·폴란드 등 주변 나라와 대화를 계속해 그들로부터 일정한 신뢰를 얻었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 희생자의 위령비에 무릎꿇고 사죄한 것은 폴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서울·베이징 등에서 전쟁 희생자들에게 헌화하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을까? 이렇게 역사의식이 결여된 사람을 우리는 총리로 받들고있다.

유럽의 5월8일은 아시아의 8월15일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8월15일 서울·베이징·마닐라·싱가포르에서 희생당한 무명용사들에게 헌화하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는 야스쿠니 참배 외에는 없다. 이렇게 역사인식이 결여된 한심한 사람을 우리는 총리로 받들고 있다.

일본의 패전은 일본 민중에게는 천황제 군국주의로부터 ‘해방’이기도 했다. 1946년 우리는 주권재민·전쟁포기·기본적 인권보장을 3대 원리로 하는 헌법을 제정해 전후의 재출발을 했다. 그것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죽이고, 나라를 위해 죽고, 나라를 위해 숨진 사람을 받드는’ 야스쿠니 이데올로기로부터 결별해, 민주국가로 재출발하는 것을 세계에 선언한 것이기도 했다. A급 전범도 합사한 그런 야스쿠니에 주변국의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간다고 우기는 고이즈미 총리가 제 정신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변국의 거센 비난으로 일본의 보수파나 경제계에서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비판은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한 이해타산적인 것이 많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주변국의 반발 자체가 아니라,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성전으로 긍정하는 야스쿠니의 역사인식은, 그에 대한 사죄를 표명한 전후 50년 국회결의(1995년) 등 정부의 공식 견해에도 반하는 특이한 것이다. 이 특이한 역사인식은 야스쿠니가 일본 국민을 침략전쟁에 내몰기 위한 정신적 지주로, 육·해군성이 관리한 종교적 군사시설이기도 했다는 설립 경위에서 비롯한다.

야스쿠니 참배는 세계에 침략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의미하고,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 나라와의 화해와 우호를 결정적으로 저해한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미래지향의 평화로운 일본, 평화로운 아시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한다.


올해 7월20~21일 서울에서 ‘세계의 눈으로 야스쿠니를 본다-문명과 야만 사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심포지엄에서 한국의 김원웅 국회의원이 우리 일본인에게 한 얘기를 곱씹어보고 싶다. “유럽에서는 역사 문제에 대해 화해가 성립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유럽 문명에 비해 아시아 문명이 뒤떨어진다는 것인가?” 야스쿠니 문제는, 일본이 이웃 아시아 나라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라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안전보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치다 마사토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위원회 사무국장,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