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5 21:17
수정 : 2006.08.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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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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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특히 쟁점이 되는 부분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가 미국과의 동맹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보수신문들은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 원만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참여정부가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은 한-미 동맹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작전통제권을 한국정부에게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동맹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히려 작전통제권을 돌려줄 구체적인 일정표까지도 제시하였다. 작전통제권의 반환은 주한미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인데도 왜 미국 정부는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첫째, 미국 정부의 처지에서 볼 때 더는 한국 정부의 비이성적 행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 통일론과 박정희 정부의 북한 보복공격 주장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 전체를 파탄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1953년 반공포로 석방과 66~67년 한국군의 비무장지대내 보복공격을 경험했던 주한미군 사령관은 두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뢰하지 못했다. 68년 안보위기 때 방한했던 당시 미국 대통령 특사 사이러스 밴스는 정일권 국무총리에게 한국이 당하는 입장이 되어야만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을 돕지 못하는 처지가 될 때 일본의 안보 역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이 민주화하면서 미국은 더는 한국군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외 군사 재배치 계획에 따라 작전통제권 환수가 추진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미국 행정부 내에서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가 계획될 때마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가 고려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63년 11월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가 내놓은 ‘미군 및 한국군 감축을 위한 계획’이라는 문서다. 이 문서는 유사시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주한미군의 규모를 5만7천명에서 4만명 수준으로 줄일 것을 검토하였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 지적한 문제의 하나는 주한미군의 규모를 너무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한 사단 이하로 주한미군이 감축될 경우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적은 수의 미군으로는 한국군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명분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 이하의 규모로 주한미군이 축소된다면, 주한미군 사령관의 계급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상의 두 가지 문제는 미국 쪽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90년대 초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문제가 한국과 미국 정부에 의해 논의되었던 것 역시 당시 미국 행정부가 국외 주둔 미군의 재편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현재 주한미군은 신속기동군으로 전환될 참이다. 주한미군의 규모도 축소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며, 현실적이지도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왜 이 문제를 제시했는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의 처지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난 60여년 간의 한-미 관계를 돌아보면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 쪽 정책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우리 처지에서만 한-미 관계를 재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제 주먹구구식 계산법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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