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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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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사회의 부패 현상은 고질병의 하나이지만 많은 영역에서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법조비리가 드러나 국민의 사법불신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조비리를 사법시험 대량합격 시대의 후유증으로 풀이하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려면 극소수만을 선발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일반국민은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우리나라의 법조비리는 사법 엘리트주의가 낳은 병폐다. 이 주의로 말미암아 사법의 폐쇄적인 구성과 운영이 당연시됐고, 폐쇄적 사법은 사법의 투명성을 상실하게 하고 외부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법 엘리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된 법조문화가 형성되는 바탕을 제공한 것이다.
나라의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폐쇄적 법조문화는 사회의 발전과 비례하여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그 간격을 넓혀왔다. 판사와 검사는 철저한 서열 속에서 승진해 왔고, 탈락하면 사직하고 변호사를 개업하는 순환적 사법구조는 각자의 업무 독립성을 흐릿하게 하여 모두 한가족이라는 의식을 낳았다. ‘법조삼륜’이라는 가족개념은 폐쇄성을 의미하고 국민의 생각과 동떨어진 의식과 관행,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구축하여 왔다.
결국 이러한 법조문화는 법조인 전체를 불행하고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퇴행적 법조문화가 사법불신과 법조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의 의식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한계가 있다. 제도를 통해서 문제 발생의 소지를 없앨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개혁은 주요 정책과제로 논의되었고 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많은 사법개혁안이 만들어졌지만 법률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서 시행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법률가 양성과 선발 방식을 바꾸는 문제, 재판을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더욱 효율적으로 하는 문제, 재판에 국민이 참여하도록 하는 문제, 형사사건에서 국민의 인권을 더욱 보호하는 방식으로 수사와 재판을 하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고 오래 전부터 누적된 개혁 대상 현안들이다.
이러한 문제 대부분이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라서 간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법개혁안은 이른바 민생법안이나 경제 활성화 법안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따라서 국회에서 뒤로 밀리는 현안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사법 선진화는 장기적으로는 당장의 민생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라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적인 사법 개혁안은 시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몫이다.
법조계는 성역이 아니다. 법조계가 사법의 독립성을 오해하여 사회로부터 차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법 구성원의 내부 독립성은 약화되고 국민한테서 멀어져 간다. 그러므로 국회는 법조계가 사회변화에 걸맞은 법조문화를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번 법조비리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어떨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번 사건을 폐쇄적인 법조문화의 개선을 위한 뼈아픈 기회로 삼아야 하고,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면 법조인 역시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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