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5 22:15
수정 : 2006.11.0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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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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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법무부가 발표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지배구조, 자본 조달 자유화, 기업 경영의 정보통신(IT)화, 회사 형태 다양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에서는 집행임원 제도, 이중대표 소송 제도,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와 같은 (부분적) 내용이 기업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비판이어서 우리 사회 논의가 자칫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를까 우려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수십만 개에 이르는 회사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회사는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의 하나다. 회사는 주주, 채권자, 임원,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모여서 생성·발전시켜 나간다. 그래서 이해 관계자들이 회사의 발전이라고 하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에 대비하여 이해 관계자 사이 사적 규율의 원칙을 명확하게 선언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규율의 집행은 대개 사후적으로 법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번 상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첫째, 그동안 현실에 뒤처져 있던 규정들을 없애거나 정비하고, 둘째, 이미 이해 관계자 사이 이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으나 사적 규율의 원칙이 없어서 기업의 거래비용이 커지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원칙을 도입하는 등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상법 개정안 내용 중 ‘회사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외환위기 직후 상법에 충실의무 조항(제382조의3)이 도입되었으나, 그 내용은 상징적인 선언에 불과했다. 판례법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우리의 사법구조상 구체적 원칙이 결여된 이 조항은 명목상의 규정으로만 남아 있었다. 회사 이사가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거래들 중에는 의사 결정권자가 이해 당사자가 되는 거래가 있을 수 있다. 이때 충실의무란 다음 두 가지 상황에 대한 규율을 의미한다. 첫째는 회사의 거래가 이사에게 사적인 이익을 줄 때 회사가 손실을 입는데도 이사가 회사로 하여금 그 거래를 하게 하는 경우이고(‘이사와 회사 간의 자기거래’), 둘째는 회사가 행할 수 있는 어떤 거래를 회사 대신에 이사가 직접 수행하는 것이 사적인 이익을 줄 때 회사에 손실이 됨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이다.(‘회사기회의 유용’)
중요한 점은 근래 이 두 가지 경우와 관련한 사례들이 실제로 발생하면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사업부를 독립법인으로 만든 후 지배주주가 유상증자 때 실권주를 인수하고 분사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이와 관련하여 소모적 논란을 피하고 기업의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법의 규율이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져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법적 규율은 선진국인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이미 판례법 및 성문법에 포함되어 있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문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념적·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제도적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한 생산적 논의가 되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법무부가 발표한 상법 개정안 중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 부분은 이사회의 승인 등 법적 요건을 구체화하는 작업 등이 뒷받침될 때 더욱 큰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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