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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8 19:02 수정 : 2006.11.08 19:02

이선희 / 광주 미혼모 쉼터 우리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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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한겨레〉는 1면에 ‘어린 엄마’(리틀맘)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낙태나 입양 대신 ‘엄마의 길’을 택한 청소년들의 ‘비애’와 사회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기사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만 약 5천명의 미혼모가 생긴다. 그 가운데 아직 20살도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아이를 키우겠다는 ‘어린 엄마’들이 있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아이를 지켜낸 생명지킴이다.

이들 어린 미혼모들이 윤락가 등지에 사는 여성이라는 생각은 진부하다. 우리가 만나는 미혼모 중에는 학교에 있어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상당수다. 미혼모 시설로 찾아오는 10대 임신부들을 한명씩 살펴보면, 모두가 각자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있다. 18살 하나(가명)는 엄마가 다섯번 바뀌었지만 어떤 엄마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아이는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을 나왔다. 또 19살 진희(가명)는 엄마 없이 아빠와 함께 살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방을 빼고 사라진 이후 고아가 돼 버렸다.

이 아이들은 정 붙일 곳을 찾다가, 이성친구한테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가정 안에서 안정되게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은 방황한다. 결국 이런 아이들은 사회 안에서 덩그러니 혼자 살아갈 방법들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이성의 친구를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정신과 육체가 ‘일찌감치’ 성숙해 이른 나이에 부부가 되는 10대 부부의 수도 적잖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현재 남자는 18살 이상, 여자는 16살 이상이면 결혼할 수 있다.

고등학생인 미연이(가명)와 지수(가명) 사이에는 한달 된 딸이 있다. 미연이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지만, 양가 부모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수 부모님의 관심은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에만 맞춰져 있고, 며느리와 손녀는 뒷전이다. 미연이 부모님도 큰 차이는 없다. 그분들도 딸의 임신이 못마땅해 산후조리조차 해주지 않았다. 양가 부모가 아이들의 삶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면서, 어린 부부와 아기의 삶은 방치됐다.

여기에 우리 사회는 어린 미혼모를 향해 ‘제 잘못이지’라고 간단히 생각한다. 그러므로 왜 이들을 도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10대 미혼모는 기부의 손길마저 받지 못해 사회복지계에서조차 소외된 집단이 됐다. 심지어 낙태의 유혹을 이기고 출산을 선택한 미혼모를 나무라기까지 한다. 생명 윤리의 시각으로 10대의 임신을 보지 않고, 단순히 단죄의 차원에서 이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성숙한 결정에 따른 생명은 태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잔혹한 윤리적 판단이 깔려 있다.

그나마 최근 미혼모의 아이 양육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여성가족부에서도 얼마 전 어린 엄마를 포함해 미혼 양육모의 실태와 미혼모의 욕구 및 서비스 개선에 대한 면담조사를 하기도 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미혼 양육모 가정에 대한 일부 생계비 지원, 의료비 감면만으로 한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미혼모 정책을 통해 우리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지만, 이런 정책도 가난의 대물림을 막지 못했다. 그러므로 미혼모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10대 미혼모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당장,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쫓아내지 말 것이며, 위탁기관을 통해 학업 이수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신의 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이선희 / 광주 미혼모 쉼터 우리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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