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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승/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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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 1월11일치 <동아일보>에는 박종운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박종운씨는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이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2000년, 2004년 총선에서 두 차례 떨어진 뒤 현재 한나라당 부천 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과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시장 경제를 지키고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박종철의 정신을 올바르게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한나라당을 선택한 것, 그리고 경제 관련 단체에 재직하고 있는 것까지 좋다. 그건 그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선택이고 호구지책의 문제다. 나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종철이의 죽음에 대해 그가 말할 때는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종철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랑스러운’ 선배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들으면 종철이는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박종철과 나는 같은 해 대학에 입학했다. 박종철과 나는 당시 제헌의회(CA)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49제인 1987년 3월3일, 그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서울 종로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징역을 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종철이의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도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살고 있다. 살아 생전 한 마디도 나눈 적 없지만, 그러나 당시 아스팔트 위에서 언젠가 한 번은 스쳐갔을, 먼저 간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말이다.
박종철의 정신이 과연 ‘시장 경제 수호’ ‘북한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시 나와 같은 정치적 생각을 가졌던 종철이가 이러한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했을까? 역사 또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 말하거나 쓸 때에 기술자의 처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종운의 인터뷰 기사는 역사 진술자의 견해가 과도하게 정치화되거나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흐를 경우, 역사나 인물을 심각하게 일그러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는 좋은 사례다. 자신이 현재 ‘시장 경제 수호’ 또는 ‘북한 민주화’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종철이의 죽음도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 건, 약하게 말하면 역사에 대한 과도한 정치화이며 강하게 말하면 종철이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박종철은 우연히 시위에 참가했다가 과도한 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그저 ‘순진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혁명을 꿈꾸던 운동가였다. 국가 권력의 잔인한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소중하게 지켜나가려 했던 운동가이기 때문에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 인터뷰 기사에서, 박종운은 “당시 내가 찾아 달라고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댔다면 그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종철이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우연히 시위에 참가한 순진한 대학생이 아니라 운동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발언이다.
박종철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시장 경제’가 아니라 바로 그 시장 경제가 파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존엄’이었으며, ‘북한 민주화’가 아니라 북한을 지렛대로 제국주의적 팽창을 꾀하는 ‘미국에 대한 저항’이었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종철이가 죽음으로써 지켜내고자 했던 ‘자랑스러운’ 선배 박종운의 입에서 종철이의 뜻을 왜곡하는 발언이 나온 것에 적잖이 실망했다. 박종철을 두 번 죽이지 말라.
신호승/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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