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28 18:14
수정 : 2007.01.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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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춘 변호사·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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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아무개 교수는 이미 십수년 전인 1996년 3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당시 법원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의 제소를 모두 각하했다. 재임용 여부는 임면권자의 자유 재량에 속하는 사항이라면서 “재임용하지 아니 하기로 한 결정 및 통지는 원고에 대하여 임기만료로 당연 퇴직됨을 확인하고 알려주는 데 지나지 아니하므로” 사법적 심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법원의 이런 태도는 2003년 2월 헌법재판소의 옛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2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르기까지 바뀌지 않았다. 사립학교 설립자의 비리에 맞서거나 힘있는 교수들에게 밉보인 교수들은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하더라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김 교수는 당시 교원소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였지만 각하되었다.
그가 새삼 2005년 6월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대법원이 재임용 탈락 교원의 심사청구권을 인정하기로 판례를 변경한 직후였다. 이번 재판에서 법원은 “재임용 거부 결정이 피고의 정관에 규정된 재임용 기준인 ‘전(前) 임용기간 중의 연구실적 및 전문영역의 학회활동, 학생의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 관계 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 유지’라는 기준에 부합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살펴본다”고 하였다. 그러나 과거 재임용 탈락 교수들은 그 옳고 그름을 가릴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만으로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랜 세월이 지나 사실관계의 입증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십수년이나 재심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청춘을 흘려보낸 당사자들로서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더욱 고집스럽게 굳혀 왔을 터이다.
2005년 1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따라 재임용 절차 및 심사 기준 등이 사립학교법에 새롭게 규정되었고,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도 제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법원은 부당한 재임용 거부 결정의 위법성, 학교 쪽의 재임용 의무, 손해배상 책임 등을 인정하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 재임용 거부 결정의 부당함이 확인된 경우에도 실질적인 구제 및 손해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원이 과거에 재임용 절차나 기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법적 심사를 거부했듯이, 여전히 일부 하급 법원은 특별법에 재임용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재임용 절차의 이행 청구를 기각하거나, 심지어 대법원 판례의 변경조차 무시하고 부당한 재임용 거부 결정의 위법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이런 사정은 대법원이 과거 판례 태도를 바꾸면서도 명확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그동안 재임용 탈락 사건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거부해 온 데 대해 당사자들에게 정중히 사과를 해야 마땅했다. 나아가 당사자들의 그 억울함을 최소한이라도 위로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법원이 이제 와서 사건 심리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원죄로 말미암아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법원은 사적 자치, 계약자유의 원칙만을 되뇌며, 법률 규정이 없다고 하여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권력 남용,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강자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것이 된다. 국민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억울해하는 판사들이 많겠지만,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신속한 재판을 통한 권리 구제, 국민들의 법감정에 더 잘 부합되는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송병춘 변호사·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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