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8 16:56
수정 : 2007.02.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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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왕/가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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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일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7차 협상이 열린다. 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미국 쪽 요구를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한의사들은 미국의 침구사와 한국의 한의사 자격을 동일하게 보는 논의를 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협정에서 의료서비스 분야의 중요한 사안은 미국이 요구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 정부가 스스로 다 내놓았다. 굳이 협상에서 꺼낼 필요도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참여정부가 의료서비스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이미 ‘영리의료법인’ 설립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을 세워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참여정부의 의료산업화 내용 가운데 의약품, 의료기기 등 생산재에 대한 산업화는 과거 정부에서도 추진돼 왔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에 ‘산업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른 서비스와 꼭같이 부를 만드는 성장주의적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은 처음이다. 바로 이것이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주장을 보면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고급 의료서비스를 개발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간자본의 투자가 촉진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에 필요한 의료재원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표상으로 삼고 있는 미국 영리병원들의 성과에 대한 평가 결과를 보면, 영리병원들은 이윤 극대화에 치중하면서 의료의 질 향상, 효율성, 고용 창출 등 모든 면에서 비영리의료기관에 비해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또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면 국민건강보험의 부족한 보장성을 보충할 수 있다고 했으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이제까지의 민간보험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보다 높은 보험료를 내면서 돌려받는 것은 건강보험보다 훨씬 낮아 보장성 보완이라는 주장은 입증이 어렵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험에서도 민간보험이 오히려 공공의료의 지출을 증가시키며 국민 총의료비 지출을 크게 높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엠아르아이(MRI) 같은 고가의료장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의료기술 수준 또한 세계적 최상위를 100점으로 봤을 때 암 등은 선진국 수준이고 평균 80.1점으로 최신 의료기술을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루 170만원의 병원료를 내는 시설까지 있어 지급능력만 있으면 선택의 자유도 무한정으로 누릴 수 있다. 의료기관 경쟁 또한 민간부문의 과잉으로 경쟁이 지나친 상태다.
이런 근거들을 볼 때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논리는 모두가 타당한 근거도 없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의료서비스 산업화 계획이 그대로 실시된다면 비록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의 틀을 유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총 국민의료비를 가중시킬 것이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으로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사회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면서 종국에는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무너뜨릴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할 것이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인 상품으로 취급하는 의료서비스 산업화 정책은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기본 철학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다. 이런 중대한 사항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민들과 진지한 논의도 없이 정부에서 선정해 구성한 위원회에서,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요구하기도 전에 어물쩡 결정해버린 이 정부는 과연 누가 참여하는 ‘참여정부’인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고 사회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참여정부가 의료양극화의 표상으로서 ‘기본적인 의료보험도 실시하지 않는 야만국가’인 미국을 그대로 닮아가려고 하고 있다.
류인왕/가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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