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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호/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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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제5차 6자 회담이 지난 8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 섞인 전망이 우세하다. 북한 핵실험 이후 강도 높은 경제제재 조처와 2차 핵실험 위협으로 맞서 꿈쩍도 않던 북한과 미국이 조금씩 양보하여 대화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지난달 16~18일에 있었던 베를린 북-미 회동에서 양국의 긍정적인 태도변화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지금까지 상당 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진 이번 회담은 북핵 폐기와 9·19 베이징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단계의 성격이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담 재개에만 몰입한 나머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의 회담이 난산 끝에 재개됐지만 결국 큰 성과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실망만 안겨준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만남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따라서 6자 회담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당사국인 북한의 강력한 핵 폐기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핵보유국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않고 이번 회담을 시간 끌기 카드로 사용하거나 핵무장을 경제적 이익이나 금융제재를 풀 방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도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인민들의 인권을 외면하고 ‘제2 고난의 행군’이니 ‘벼랑끝 전술’ 같은 고립외교로 극한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제적 외톨이가 되어서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도자는 우선 인민들을 추위와 배고픔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국제사회의 신뢰회복도 중요하다. 얻을 것을 얻고 나면 약속을 저버리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희망이 없다. 한반도에 더 큰 재앙만 초래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은 북한에 핵 폐기를 요구하고 설득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없애고 난 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강대국들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나 체제 붕괴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핵 폐기에 걸맞은 충분한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에 문을 열고 핵무장 대신 개혁·개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종전처럼 북한이 요구하는 완전한 체제의 보장과 경제 지원에 대한 확실한 담보 없이 핵 폐기만을 요구함으로써 선택의 여지 없는 배수진을 치게 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나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구실이 중요하다. 세계 평화를 위해 ‘지배의 리더십’이 아닌 ‘봉사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북한이 거절할 수 없는 대안과 함께 실천 가능한 방법과 구체적인 시간표를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셋째, 회담 참가국들의 신뢰다. 대화와 타협으로 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된다 하더라도 약속이행에 대한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 회담 결과는 물거품이나 다름없다. 자국의 희생 없는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상대국의 양보만을 고집하고 합의된 사항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불신만 불러오고 대화 단절은 물론 협상카드만 점점 소멸되어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마저 잃게 될 것이다. 결국 6자 회담 성공의 열쇠는 북·미의 통 큰 결단과 참가국들의 신뢰에 달렸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태종호/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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