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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8 18:02 수정 : 2007.03.18 18:02

김계곤/한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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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글 세계화란 무척 중대한 화두다. 지난 10여 년 동안 외국인 한국어 시험 응시자가 해마다 2만 명 정도 늘어 지난해는 약 15만에 이르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외국 노동자의 한국 취업 때 한국말 시험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방침이 결정적인 구실을 한 덕분이다. 이를 계기로 특히 동남아 쪽에서 한국어 열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어 학원 설립은 물론 대학에서도 한국어과 설치가 유행이 될 정도다.

지금의 제도는 비록 인력송출 기관의 비리를 막고 노동자의 작업 안전 및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처였으나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 전파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정책이다. 따라서 이 방침은 우리나라 정책 입압자나 공무원의 독창성과 애국심을 입증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한국어 시험 정책이 시행된 지 3년여 만에 무척 염려스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동남아 각국에서 한국어 학원이 늘어나는 것을 ‘사설 한국어 학원 난립’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외국 학생이나 외국 노동자들이 한국어 공부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평하는 말에 일부 우리 공무원과 시민단체에서 동조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영어 학원이나 중국어 학원이 많으나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외국에서 한국어 학원 사업을 하거나 혹은 하려는 사람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무슨 근거로 사설 한국어 학원 난립으로 말미암아 한국어 학습에 많은 돈이 들고 비리가 발생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 학원이 학습 효과를 과대 포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것을 비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어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아깝지 않고 외국인이 한국어 학습에 드는 비용은 아깝다는 인식에 이르면 무척 당황스러워진다.

그리고 이들 나라를 대상으로 엄청난 국민 세금을 들여 한국어 교육을 무료로 시키겠다는 정부 방침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 나라의 필요에 따라 한국어가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는데도 무료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한국어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돈 내고 배우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데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는 발상은 자선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예산으로 민간기관이 하기 어려운 일, 곧 다양한 한국어 교재나 각종 문화 및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외국 대학이나 민간 한국어 학원을 도와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한 정부 부처에서는 한국어 학원에 취업시킨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국어 강사를 양성하고, 또다른 부처는 한국어 학원을 죽이려는 어리석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한국어 무료교육 정책뿐만 아니라 한국어 시험도 민간 지원이 아닌, 정부 기관이 직접 간여하겠다는 발상도 한국어 세계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어 전문 기관들이 벌여 온 한국어 시험을 행정 편의에 따라 한국어 연구나 교육과 관련이 전혀 없는 정부 기관에 위임하려는 움직임이 정부 안에 있다고 한다. 효율성과 경쟁력에 따라 많은 정부 업무를 민간에 넘기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한국어 시험에 따른 각종 시험 방식 및 유형, 그리고 교재 개발 등을 통해 한국어 보급을 주도해 온 이들 전문 민간기관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언어는 문화의 꽃이다. 저절로 피는 꽃도 있지만 정성과 염원으로 피는 꽃도 있음을 되새겨 정부가 한국어 세계화 정책에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김계곤/한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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