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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2 17:18 수정 : 2007.05.22 20:49

이미영/건국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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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개혁을 위해 만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시행 초기부터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정부투자관리 기본법, 정부산하기관 관리법, 공기업 민영화법, 이 세개의 법률을 통합하여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의 명분은 공공기관 지배구조와 통제감시 시스템을 일대 혁신하여 공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서슬퍼런 법률이 시행되자마자 그 대상이 되는 공기업 감사들이 혁신포럼이라는 거창한 미명 아래 남미 외유를 떠난 것이다. 도대체 가서 뭘 배우겠다는 것인지, 갔다 와서 뭘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혁신 아이디어는 이과수 폭포를 보고 와야만 떠오르는 것인지 모든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도 혁신포럼이 국가예산을 사용해 집단으로 남미 출장을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는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만든 부처가 왜 그것을 눈감아 줬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더군다나, 혁신포럼 자체가 기획예산처가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진 친목단체라는 데는 말문이 막힌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이렇게 처음부터 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법률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 운영의 문제일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들춰봤더니, 지배구조 구성에 여러가지 절차와 통제장치를 만들어 놓긴 했는데 그것은 공기업 개혁을 담보한다기보다는 기획예산처로 하여금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흔적이 엿보인다. 공기업 사장, 이사·감사의 임명, 예산 편성, 경영 평가 등 기획예산처가 행사할 수 있는 공식적 비공식적 권한은 과거 어느 정부 부처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경구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되도록 권한을 분산시키고 상호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1995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합쳐 재정경제원이라는 공룡부처를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뼈아픈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래서 분리되어 나온 기획예산처가 참여정부 들어 재정경제부를 누르고 공룡부처가 되어가고 있다. 예산만 신경쓰기도 바쁠텐데 기금 관리, 공공기관 혁신 등 업무영역을 계속 확장시켜왔고 심지어는 국가 개조를 위한 기획 업무까지 자임하고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얼마 전, 실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2030 플랜’이라는 거창한 국가 프로젝트를 단 몇 개월 만에 만들어 낸 것이 기획예산처 아닌가. 이제 기획예산처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뭐든지 그려내고 밀고 나갈 수 있는 막강 부처가 되어 버렸다.

참여정부는 미시적인 업무프로세스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정부혁신만 외치다 보니 정부 기능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상실한 듯하다. 권한은 분산시켜야 한다. 왜 공공기관에 대한 지도 감독을 분산시키지 않는가? 기획예산처는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감사들에 대해서도 업무수행 실적을 평가하고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두고 있는데, 이 규정을 보면, 앞으로 감사들이 기획예산처와 잘 지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 뻔히 내다보인다.

공기업 감사가 업무를 제대로 하는지는 공기업을 늘상 감사하는 감사원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공기업 사장이 경영을 잘 하는지는 소관부처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 기획예산처가 다 움켜쥐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으로선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에 대한 감시업무를 핑계로 조직만 늘리려 하지 말고 더욱 철저한 자세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공공기관을 잘 통제하길 바랄 뿐이다.

이미영/건국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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