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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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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뛰어난 행동을 한 이에게 동물적인 감각을 지녔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 와서는 여전히 동물을 무시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동물들이 뭔가 사람과 비슷하거나 능가하는 일을 했다면 ‘에이, 동물들이 어떻게?’ 하고 쉽게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과장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게 바로 동물의 능력이다. 주말 텔레비전에서 ‘위기에 처한 주인을 보았을 때 개들이 어떻게 할까?’ 실험한 내용을 보여 주었다. 아마 최근에 캐나다에서 발표한 논문을 근거로 한 모양이다. 그 논문이나 이 프로그램에서 내린 최종 결론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대부분의 개들이 주인을 버리고 달아난다’였다. 아마 많은 애견가들이 충격을 받았을 줄로 안다.얼마 전 일본에서 주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도 주인을 못 잊어 날마다 역전에서 기다리는 개 이야기(하치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그 개는 역전에서 풀빵 장수가 날마다 풀빵을 주기 때문에 나왔다는 뒷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동물 영화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좋은 장면을 찍으려고 억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예전에 ‘레밍의 자살’을 촬영하려고 일부러 바다로 밀어 넣는 행위를 했고 우리 동물원의 불곰도 목욕하는 한 장면을 찍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하면, 동물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불신이 일기도 한다. 토끼와 닭이 어울려 노는 장면 촬영에서도 분명 토끼가 건강상 문제(탈장)가 있어 자기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약한 닭과 사는 것 같다고 했지만 그런 말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동물을 사람처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심각한 착각이다. 그들은 여전히 본능에 더 가깝다. 위험에 처하면 자기부터 살고 보는 게 바로 본능이다. 그 본능을 상쇄하려면 수많은 반복 훈련을 거쳐야 한다. 이번에 신참 사육사와 그가 돌보는 무플론 산양의 뿔을 잘라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 뿔이 잘못 자라서 피부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육사는 잡는 것은 자신 있다고 나보고 톱만 가지고 오라고 했다. ‘설마 혼자서 잡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올라갔다. 그 신참 생각에, 자기가 먹이 줄 때 건드려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때 그냥 붙들기만 하면 쉽게 잡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산양은 그 사육사의 의도를 눈치 채고 아무리 빗자루로 쓰는 척 가장을 하고 다가가도 전혀 먹이 주변에 모여들지 않았다. 이런 동물들의 행동은 1년 정도 동물원에 적응한 사람이면 익히 짐작하는 행동이다. 야생 원숭이 생포작전에서도 마음에 무언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접근하면 이미 원숭이는 그 마음을 읽고 그 사람을 멀찌감치 피해 버렸다. 그 작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원숭이가 어쩌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행동하는지 놀랐다는 것이다. 주인은 한 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다던 개들에게 나는 무수히 물려보았다.
하지만 실험은 실험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실험만으로 동물의 행동을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정말 내 개의 충성심을 알고 싶다면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도 스턴트처럼 가장된 위험도 아니고 일부러 불 속에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 대신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냥 믿게 된다. 성급하게 실험만으로 ‘오수의 개’가 가짜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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