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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동북아시대위원장·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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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가속도를 내며 동북아 정세가 급변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의 아베 내각이 실각하고 후쿠다 야스오 새 총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내각이 등장한 것은 주목할 변화다. 아베 내각이 막을 내린 배경에는 도도한 동북아 정세 흐름을 외면한 채 오로지 미-일 동맹에 의존해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동북아의 외톨이로 몰고 간 외교노선이 자리잡고 있었다.특히 미국 의회가 군대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사건이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7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합의를 내놓은 것은 아베의 일본에 경종을 울렸다고 하겠다. 아베의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동북아 정세의 급변이 아베를 실각시키고 대안을 선택한 것인데, 그가 바로 후쿠다 신임 총리다. 이런 측면에서 후쿠다 총리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첫째, 6자 프로세스에 좀더 적극적으로 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몫을 찾고 자신의 위상을 회복하는 과제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의 일차적 이해 상관자로서 일본이 6자 프로세스에 임해 왔던 그동안의 자세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하루빨리 6자 회담 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둘째, 북-일 관계 정상화 문제를 전향적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납치 문제에 함몰되어 북-일 관계를 지금처럼 무작정 끌고 가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게 정세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2년 평양선언의 정신에 따라 납치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고, 북-일 수교를 위한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 점에서는 한국이 협조할 수 있다.
셋째, 지금과 같은 정부 사이 갈등적 한-일 관계는 양국의 국익에 해롭다. 후쿠다 신임 총리는 한-일 관계를 협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노선을 갖고 있다. 영유권과 해양 관할권 문제는 실무부처에 맡긴다 하더라도, 역사와 관련된 여러 현안들은 양국 지도자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에 정상회담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숙명과도 같은 한-중-일 삼국관계가 과거와 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후쿠다 신임 총리의 평소 외교노선과 정치적 소신이 소중하다. 과거 일본 지도자들이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말했지만, 얼마나 진솔했고 또 절박한 자세로 임했느냐를 두고서는 평가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가까이는 고이즈미 총리도 그런 구상을 말하고 다녔지만 공동체는커녕 역내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아니러니를 보여주고 말았다. 지역공동체 건설 문제를 일국적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는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어 말할 수도 없고, 한국과 중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공정하다.
후쿠다 신임 총리가 최근 어느 연설에서 적절히 평가한 대로 동북아에는 사실상 경제통합이 일어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과제는 이런 추세를 가속화해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며, 그럴 때 정치·안보적 위협이 그 속에 묻혀 위력을 상실하게 된다. 유럽에서 경제공동체가 구축되었을 때 그것이 평화를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가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국민과 정치권이 후쿠다 야스오 총리 체제를 선택한 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이제 후쿠다 신임 총리가 자신의 외교노선에 충실하게 임하여 동북아에 부는 훈풍에 일본마저 가담시킨다면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역내 모든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수훈/동북아시대위원장·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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