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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17:48 수정 : 2007.10.11 17:48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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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은 ‘제3회 건축의 날’이었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양적 하드웨어보다는 질적 소프트웨어가, 기능보다는 가치와 창의가 더 존중받는 시대라는 선언과 함께 수준 높은 건축 문화자산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창의와 열정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의 축사를 건축계의 구성원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8일 늦은 저녁 ‘2007 프랑크푸르트 한국현대건축전-메가 시티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여진 한국 현대건축전의 출품작 점검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에서 열릴 12월 전시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소박한 행사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식당에서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전시작품을 출품한 16명의 건축가와 1명의 사진작가, 총괄기획자가 참석했다. 그들의 전시회 준비작업을 내심 걱정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일궈낸 성과와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행사는 유럽의 저명한 건축박물관인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DAM)이 초청한 최초의 한국 건축가 국외그룹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날의 행사 초청장에 인쇄된 협찬기업 가운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 한국 현대건축, 국외 저명 박물관 초청, 국외그룹 전시회와 같은 수사가 붙으면 으레 그렇듯 크고 작은 협찬사의 얼굴 내밀기나 보도 경쟁이 있으리라 믿었던 참석자들에게는 생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건축계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남 없이 말하고 듣던 얘기는 대개가 이렇다. 미국이 세계 건설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범정부적 건축정책을 꾸준히 펼치고 있기 때문이며,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들이 대거 서울에 드나들며 대형 건축물의 설계자로 지명되는 데는 젊은 건축가의 창의와 자국의 기술력을 존중하고 이들을 국외 설계시장에 내다팔도록 지원한 국가 건축정책과 민간 부문의 관심과 지원이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네치아(베니스)가 세계적인 현대건축의 실험장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의 50%씩을 분담하면서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을 주관하고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각종 지원정책을 편 데 힘입은 바 크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국가나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이 십시일반으로 자국의 건축가 양성과 국외 문화시장 개척에 나섰기 때문에 여전히 문화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그런데 유럽의 대표적인 건축박물관의 초청으로 12월7일부터 내년 2월8일까지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건축전’의 출품작을 점검하기 위한 이날 모임은 그동안 듣던 열띤 구호와는 달리 여전히 헛헛하기만 하였다. 신정아씨가 기획한 전시회에 후원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화예술계에 ‘후원’이나 ‘협찬’이라는 말은 이미 금기가 돼 버렸다. 별다른 도리가 없어진 기획자와 건축가들은 스스로 비용을 나눠 내어 전시작업을 준비했고 그 결과는 박수로 화답해야 할 만한 값진 성과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의 에너지와 노력으로 행사를 꾸며야 옳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문화예술계의 현실이다. 건축문화 강국을 그린다면 국민적 관심과 물질적 지원이라는 양질의 토양이 아직은 필요하다. 건축의 날을 또 한 번 보내며 건축문화 인프라 확충을 외치는 일이 구호로만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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