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1 18:13
수정 : 2007.11.02 14:23
기고
2006년 2월, 군대에서 동성애자 병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힘과 동시에 에이즈 강제검진을 받아야 했고, 성정체성 입증자료로 ‘성관계 사진’ 제출을 강요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군대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폭로에, 동성애자를 군대 성폭력의 가해자로 낙인찍었던 국방부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국방부는 그해 4월1일자로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이하 관리지침)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관리지침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며 지적했던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무시한 결과가 드러나고 말았다.
2007년 10월24일, 군에 입대해 자대를 배치받은 어느 병사가 선임병, 군 간부에 의해 40여 차례 지속적인 언어·신체적 성희롱·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드러났다. 피해자는 ‘나랑 잘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식의 언어적 성희롱을 당했고, 한 소대장은 피해자를 침대 위에 눕혀 목을 깨물며 침을 바르는 성폭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군 간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 순간부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밝혀야 하는 고충에 시달렸고 쌓여가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해를 네 차례나 하기에 이르렀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신고할 곳도 마땅치 않고 설사 신고한다고 해도 구제받기 힘들다. 더욱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조차 되지 않아 2차 가해의 위험이 농후하다. 특히 이 피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 더더욱 군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곳을 찾기 힘들다. 그것은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이 동성애자 병사를 관리도 보호도 해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조악한 동성애관을 가지고 인권을 침해하는 지침이기 때문이다.
관리지침 중 ‘동성애자 병영 내 유입, 확산 차단 대책 미비’라는 조항이 있다. 군대 내 동성애자가 존재하면 여타의 군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국방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동성애는 ‘유입, 확산’이라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고 특히 ‘확산’이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며 편견을 조장한다. 성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며, 성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지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관리지침에서 국방부가 동성애를 단지 행위로서만 접근하며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조항이 있다. ‘인성검사를 통해 동성애 성향 잠재자’로 밝혀지면 집중관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곧 동성애 성향 잠재자는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집단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기에 관심 사병은 곧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당장 ‘병영 내 동성애자’를 분리하고 관리하면 될 것이란 착각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국방부는 전반적 사회 인식에 따라가지 못하는 동성애관을 가지고 동성애를 하나의 범죄행위(군 형법 92조 계간금지)와 정신장애(징병신체검사규칙 성선호도, 성주체성 장애)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법·제도가 유지되는 한 관리지침은 쓸모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3, 4차 피해 당사자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관리지침이 동성애자 병사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착각을 버리고 관련 단체들과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또한 군대 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근간이 되는 군 형법, 군 인사법, 징병신체검사 등 관련 조항에 대한 개정과 폐지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장병권/동성애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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