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7 18:02
수정 : 2007.11.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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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행/재미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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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날씨가 쌀쌀해지니 더욱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진다. 창작에서는 무에서 유가 나오는 법이 거의 없다. 유에서 유가 나오기 때문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더 좋은 글이 나온다. 책을 많이 읽고자 해도 일일이 비싸게 사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큰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도서관 문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은 학생들의 시험공부 장소로만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고, 일반 독자를 위한 장서량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학과 역사·문학 등 일반적인 교양에 필요한 책들을 찾아 읽을라치면 부족한 장서량에 허기가 몰려든다.
학교와 지자체에서 도서관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그 장서량이 수준급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농어촌과 산간, 도서 지방, 군부대 등 문화시설이 미약한 곳일수록 공공 도서관이 많이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한 국민의 문화 수준은 그 나라 도서관의 장서량과 수준으로 가늠할 수 있다. 16세기부터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는 프랑스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과 정기간행물을 의무적으로 한 부씩 도서관에 제출하게 해, 돈 안 들이고도 오늘날의 방대한 역사적 장서를 확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서관이 국내 장서를 내실 있게 구비할 수 있도록 하려면 이런 제도를 지금이라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도 지난 6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기획단이 출범해 도서관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본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공부를 하고 마음의 양식을 얻어야 하는 것은 학생이나 교수뿐 아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과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한 사람들이다. 정약용은 귀양살이 18년 동안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그의 책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썼고, 유배지에서 외가의 도움으로 서가에 책 ‘천삼사백 권’을 꽂아 놓고 공부했다고 한다. 박노해와 김남주 시인 같은 많은 작가들도 감옥에서 심금을 울리는 다수의 작품을 써냈다. 또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대작 <옥중 수고>를 쓴 그람시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보고 신문을 여러 가지 읽었으며, 외부 서점에서 우송하는 정기간행물을 직접 받아 읽으며 글을 쓸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차단, 가혹한 감시, 건강상태 악화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지적 탐구를 계속해 갈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의 힘이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필요한 곳은 외부 세상과 단절돼 절망에 빠져 있는 교도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교도소에 이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종이와 필기도구조차 반입이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교도소도 여전히 많다.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책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목소리다. 하루빨리 교도소 도서관을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도서관을 필요로 하고 매일 책을 읽고 써야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며, 농민·노동자·군인·재소자 등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더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 언론,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서 도서관을 많이 만들고 도서관에 양서를 고루 갖추게 되면, 불황에 빠진 출판계와 작가들이 더욱 용기를 얻어 양서를 양산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될 것이다. 책 읽기가 기득권을 가진 특수 계층의 특권이 아닌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이 되는 날,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연행/재미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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