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8 18:01
수정 : 2007.11.0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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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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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임 지방국세청장이 전임 청와대 비서관 소개로 알게 된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한테서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을 받고, 국세청장은 이 중 6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문제의 지방국세청장은 세무조사 중단 대가로 돈을 받았고, 김씨가 세금 추징액 50억원을 고민하자 “회사를 폐업하면 세금을 안 내도 된다”고 조언까지 해줬다. 세무조사의 계기를 제공한 탈세비리 제보자가 누군지도 김씨에게 알려줬다. 단순한 수뢰뿐 아니라, ‘탈세 가이드’ 노릇까지 한 셈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모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러나 단순한 흥밋거리일 리 없다. 충격을 넘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세청 40년사는 각종 권력형 비리와 맞닿아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의 대선출마에 따른 현대그룹 세무조사, 국세청의 대선자금 조달사건 등 정치적으로 악용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고질적인 세무 관련 부패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세청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많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거머쥐기 전에는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다가도 막상 권력을 잡으면 세무조사의 힘을 권력유지에 이용해 왔다.
둘째, 조세징수권이 형벌권 다음으로 국가의 강력한 권한인 탓에 인권 침해와 부패가 발생할 소지가 큰 반면 세법은 복잡한데다 전문성이 요구돼 납세자와 정부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존한다. 더욱이 조세회피 관련 부패는 당사자 간의 철저한 비밀유지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별개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적발된 경우가 아니라면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셋째, ‘국가우월적’인 세법 탓도 크다. 납세자가 고의나 과실 없이 복잡한 세법을 오해해서 성실 납세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런 선의의 체납자에게 100%에 가까운 가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 전에도 부당한 징세권 행사를 통해 강제 집행할 수 있고, 재판 결과 부당한 세무조사였음이 드러나더라도 국가는 연리 3.7%의 이자만 주고 피해보상을 안 해도 된다. 세금 강제징수 기간은 5년인 반면, 이의신청 기간은 고작 90일이다. 세법은 너무 어렵고 복잡한데다 비현실적이다. 법령 집행 때 유권해석 의존도가 높으면 납세자들은 해당 기관을 두려워하게 된다. 무엇보다 비리의 싹이 자라는 환경이다.
비리공무원 몇 명을 ‘일벌백계’한다고 국세청 신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처럼 국세청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또 세무조사 등 일체의 조세행정 과정에 고위 공직자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도록 금지규정을 신설하고, 이 규정에 어긋나는 요청을 받은 세무공무원은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되, 신고 의무를 위반했을 땐 형사처벌하도록 세법에 명시해야 한다. 훨씬 강화된 세무공무원의 청렴성·투명성 의무를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 한편으로 감사원과 별도로 ‘(가칭)국세청감독위원회’를 둬야 한다. 미국은 재무부 안에 ‘국세청감독위원회’를 두고 위원 9명 중 6명은 의회 상원의 동의를 얻어 민간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위원장은 민간위원 몫이다.
성실 납세자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국가우월적’ 세법을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 국가예산의 핵심 조달기관인 국세청이 지금처럼 ‘정치적 권력기관’ ‘고착화된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공동체 발전의 외침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지식인과 정치세력들은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저마다의 이익과 당리당략이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진정한 ‘국세청 개혁’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
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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