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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9 18:45 수정 : 2007.11.19 18:45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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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남북 총리회담이 8개조 49항에 이르는 풍성한 합의를 도출했다. 이 합의대로만 된다면 남북 관계는 문자 그대로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마냥 기쁘지만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 때문이다. 북쪽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전례 없는 적극적 태도에 비추어 북쪽은 2007 남북 정상선언을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한 것 같다. 이달 말에 열리는 남북 국방장관회담도 “장군님이 서명한” 2007 남북 정상선언을 거스를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남북 관계 외적인 변수 때문이다.

우선 한반도 정세를 낙관할 수 없다.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예상보다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불능화와 신고는 부시 대통령의 지적처럼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은커녕 적절한 시기에 발족하기로 되어 있었던 별도의 평화포럼도 감감무소식이다. 6자 외교장관회담의 조속한 개최는 기대 난망이다.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면 비핵화와 남북 관계의 속도 차를 두고 문제제기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 발신지는 미국이 될 것이다. 미국은 남북 관계의 속도조절을 요구한 전력이 많다. 참여정부 초기 개성공단 착공식이 6개월이나 지연되었던 데는 북핵 문제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더욱 분명한 속도조절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 장관급회담의 연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협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이와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2007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 총리회담 결과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설명’을 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연관된 또 다른 문제는 정권교체기라는 점이다. 막연히 정권교체에 따르는 정책 공백이나 혼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차기 정부 초기에 남북 관계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새 정부는 항상 한-미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남북 관계의 속도조절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조금 거칠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눈치를 보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러한 한-미 관계의 균형이 차기 정부 초기에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미국의 우려는 외교채널과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 내부에 확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논리적 균형감은 매우 부적절한 접근이다. 남북 관계의 발전이 비핵화의 강력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철학과 자신감의 결여 탓이다. 2007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 총리회담의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북한의 대남 의존도와 한반도의 ‘탈군사화’는 획기적으로 증대하게 된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할 수 있는 자산이다. 남북 관계의 속도조절이 필요한 때는 북한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깨고 다시 ‘핵국가’의 길로 돌아갈 경우이지 지금이 아니다.

모처럼 남북 관계는 동북아·한반도 질서에서 하나의 확고한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기존의 6자 트랙과 북미 양자 트랙, 그리고 곧 가동될 4자 트랙 모두를 견인할 수 있는 것이 남북 트랙이다. 남북 관계 속도 조절론으로 스스로 한반도 정세의 변수가 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상실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성배/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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