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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7 18:09 수정 : 2007.11.27 18:09

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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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일찍이 “재력과 병력, 신뢰 중 국가가 마지막까지 고수할 것은 신뢰”라고 했다. 백성이 믿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고 설파한 것이다.

2005년 4월 발의된 ‘학교용지 부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 8개월 만인 지난 21일 어렵사리 통과됐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위헌결정 법안에 따라 돈을 돌려준 전례가 없으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재정질서를 흔드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환급을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된다”고 한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소급입법이며, 국회 통과 땐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국회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학교용지 부담금은 2005년 3월 헌법재판소가 “헌법상 무상교육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이다. 위헌결정으로 9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환급받았고,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고지서를 받고도 미납한 사람도 해당 지자체에서 징수를 포기해 위헌결정의 혜택을 입었다. 문제는 이의제기 기한을 넘겨 총 4529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25만여 납세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성실하게 부담금을 납부한 납세자들로, 결과적으로 이들만 손해를 보게 된 셈이다. 위헌결정은 ‘애당초 국가에서 거두지 않아야 했는데 잘못 거뒀다’는 의미다. 그리고 ‘잘못 거둔 세금은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개인들끼리도 잘못 받은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절도죄·사기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개인보다 더 강한 도덕적 의무가 요구되는 국가가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성실납세 의무를 배운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체납자보다 성실 납세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국가의 묵시적 약속이 전제된 교육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학교용지 부담금에 관한 한 이런 약속을 저버리려 하고 있다. 국가가 성실납세를 요구하기 위해선 ‘잘못 거둔 세금은 반드시 되돌려준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만약 청와대의 논리대로라면, 납세자는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조세 고지에 대해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세금은 가능한 한 내지 않고 버티는 것이 유리하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럴 경우, 한국의 법적 안정성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재정문제에 대한 행정부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올해 세수 초과액이 11조원이 넘는데 4529억원이 없어 환급을 못 해 준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특별법은 납세자의 기본권 및 국가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 문제로, 돈문제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소급입법 금지’의 법리도 아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애초 납세자에게 불리한 법의 소급적용을 금지해 납세자를 보호하려는 법리다. 특별법은 수차례의 국회 공청회를 거쳤고, 대부분이 법조인 출신인 국회 법사위원들의 충분한 검토를 거친 법률이다. 이를 두고 위헌 시비를 벌이는 것은 의회의 권위, 나아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다. 현행 조세징수권은 5년이다. 하지만 납세자의 이의신청 기한은 90일이다. 행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위헌적인 법이라면 미리 알아서 9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안 했으면 납세자 책임이다.” 언제든 국가가 우선이고, 납세자는 억울해도 뒷전이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성실납세의 대가로 ‘환급소외’를 건네받은 25만여 납세자들의 배신감과 분노, 아픔을 먼저 헤아려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는 부디 공자가 국가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신뢰를 ‘단돈 4529억원’에 팔아, 후대에 두고두고 원망을 듣지 않길 바란다.

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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