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0 19:06
수정 : 2007.12.1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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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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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일본이 지난달 20일부터 외국인 입국자의 지문 채취를 시작했다. ‘테러리스트’ 유입과 강제퇴거 처분자의 재입국을 막는다는 명목.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 권리, 무죄추정 원칙 등 소중한 인권원칙들은 실종되었다. 당장, 일본 안에서도 인권침해를 중단하라며 법무성 앞에서 반대집회가 벌어졌다. 세계 인권단체 72곳에서 일본 법무장관 앞으로 항의서한을 발송하고, 여행자들을 정중하게 맞이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에 입국하는 여행자들 중 30%는 한국인이다. 지난 9월 한국 인권단체들은 한국 정부에 물은 바 있다. “일본에 가는 한국인들이 인권침해를 당하게 되었는데, 한국 정부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사실 한국 정부는 일본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외교통상부는 전자여권 도입과 함께 여권에 지문을 수록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지문수록은 본인확인의 신뢰성 향상에 그 목적이 있고, 이는 국외의 각 국경에서 한국 여행자들의 지문을 채취해서 여권에 수록되어 있는 지문과 비교·확인해 볼 때 달성될 수 있다. 즉, 외교통상부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한국인들의 지문을 채취해주길 바라고 있는 셈이다.
전자여권 표준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정하고 있고, 얼굴 사진을 수록하는 것은 필수지만, 지문은 ‘선택사항’(optional)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 등 전자여권을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문을 수록하고 있지 않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여권에 지문을 수록할 계획이지만, 유럽연합 여권의 지문은 유럽연합 회원국들만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법적·기술적 조치가 취해져 있어서, 유럽의 여행자들이 세계를 여행하면서 지문을 채취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오는 7월부터 지문을 수록한 전자여권, 아니 생체여권이 발급된다. 물론, 한국도 유럽연합처럼 한국 정부가 허가한 특정 국에서만 여권에서 지문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통합이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서 회원국들끼리만 지문정보를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일제히 지문수록을 시작한 것에 비해, 한국은 그러한 통합 환경도, 지문을 공유하기로 한 파트너도 두고 있지 않다. 한국이 허가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기존의 여권처럼 얼굴사진과 신상정보만을 가지고 본인확인을 진행하게 된다.
한국이 허가하는 나라가 없거나 적다면, 지문은 처음부터 불필요한 정보였다고 정부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다. 이는 국가가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는 꼭 필요한 정보만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한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반면에 본인 확인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허가하는 나라가 많아질수록, 한국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지문채취를 강요받는 차별적 인권침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앞으로 생체여권을 지닌 사람들은 한국의 허가를 받은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한국인이세요? 이쪽으로 와서 지문 찍고 가세요”라는 안내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여권에 지문을 넣지 않은 대다수 다른 국적 여행자들이 일반적인 출입국 심사 절차를 밟는 동안, 한국인 여행자들은 차별적 인권침해를 당하는 셈이다.
일본을 인권침해 국가라고 한다면, 한국은 인권포기 국가라고 할 만하다. 인권이 가장 약해진다는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한국민들은 신체와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것도 모자라, 차별까지 받게 해 달라고, 정부가 국민을 내몰고 있다.
김승욱/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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