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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7 18:57 수정 : 2007.12.17 18:57

이종태/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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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준비해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수능등급제가 대입 전형에 적용도 채 되기 전에 뭇매를 맞고 있다. 요즘 일부 언론 논조를 보면 마치 등급제가 교육을 그르치는 원흉인 것 같다. 그런 정책을 도입한 현 정부는 교육을 망치는 주범인 양 묘사된다. 과연 수능등급제는 잘못된 정책인가?

등급제 비판에 열 올리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근거는 한 문제 맞고 틀림에 따라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매체들은 어떻게 찾았는지 친절하게도 그런 사례를 찾아 당사자의 ‘억울한’ 심정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좀더 일반적인 비판의 근거로는 등급제가 점수제에 비해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고 억지 가득한 논란이다. 그러한 문제나 사례들을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또 그로 인해 2008 대입정책 실패를 거론할 만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사례들이나 반응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정책 도입 과정에서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등급제의 본래 취지는 지나친 점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수점 이하의 점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피 말리는 경쟁’ 대신 일정한 점수대에 있는 학생들을 같게 보는 ‘느긋한 경쟁’ 풍토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 문제 더 맞으나 더 틀리나 같은 등급을 유지할 수 있으니 조금은 더 느긋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의 경쟁 압박감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반론은 점수제와 마찬가지로 경계선상에서는 1, 2점으로 등급이 갈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상대적 억울함은 더 크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그러한 억울함은 점수제에서는 모든 학생이 당할 수 있음에 비해 등급제에서는 극히 일부에만 해당된다. 왜 언론 매체들은 점수제 아래서 소수점 이하의 점수로 탈락한 더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거론하지 않는가?

여기서 비판자들은 등급제의 본질적인 한계로 변별력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변별력이 낮은 것은 사실이며, 그 점은 등급제 도입 당시부터 예견된 바이기도 하다. 2008 대입제도의 또다른 축인 내신제도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대학들은 내신반영비율을 턱없이 낮추어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변별력’이란 무엇이며, 왜 굳이 변별력이 낮은 등급제를 도입해야 했는가? 변별력의 의미를 단지 시비 없이 학생들을 줄 세워 선발하는 것으로 본다면 점수제가 백번 낫다. 그러나 숫자로 표시된 점수가 사람의 실제 능력과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점수 경쟁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창의력을 고갈시킨다는 오래된 지적은 새로운 선발 방식을 필요로 했다. 기계적인 변별력보다는 사람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애초 등급제 도입은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와 함께 추진됐다.

일부 수험생의 억울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새롭게 도입된 등급제를 가동도 하기 전에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맹목적 점수 경쟁을 부추기는 과거로의 회귀이며, 기득권 세력이 대선 분위기에 편승해 교육정책에서 배타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정치적 음모다.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에서 해방시키려는 등급제는 유지돼야 하며, 오히려 내용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변별력 문제는 대학들이 창의적 전형방법 개발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대학별 본고사일 수는 없다. 왜 우리 대학들은 외국의 유명 대학들이 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가?


이종태/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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