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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5 18:39 수정 : 2007.12.25 19:41

이광석/경북대 법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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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기(KAL) 폭파범 김현희씨가 일본인이라 우기다가 한국인이라고 자백한 것은 뜨거운 물을 갑자기 부으니 “앗, 뜨거!”라는 한국말이 입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바로 ‘한국말’이다.

요즘 정부 여러 부처에서 우리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부처 저 부처 상관 없이 관심을 보이니 언어정책을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리둥절하다. 조직을 어떻게 꾸리느냐는 이론의 하나가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조직도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 정부 쪽에서 우리말에 관한 한 국립국어원이 전문성을 갖고 있으나 최근 그 기능이 배제되는 듯해 걱정이 앞선다.

대표적인 것이 법무부가 2008년부터 시행하겠다는 사회통합 교육이다. 이는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에 따라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와 문화 교육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어 습득은 기초과정이라 할지라도 형식적인 강의나 몇 시간 들어서 되는 게 아니다. 외국인 한국어 교육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교재개발, 교수기법, 능력 있는 강사 양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시스템은 현장 수요를 채우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단순히 강의실에 의자 몇 개, 교사 몇 명이라는 식의 기준을 정하면 절로 이뤄지리라 판단하는 듯하다.

또 여성가족부가 여성단체, 인권단체 등을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로 지정해 한국어 교육을 펴려는 정책 또한 전문성 논리에 어긋난다. 취지는 좋지만 이런 방법만으로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결혼 이주민과 그 자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한국어 교육 문제는 그들의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중대한 일이므로 한국어 교재, 교수기법, 교사 양성 등에 숱한 연구와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단지 수천만원 투자해서 한국어 교재를 쉽사리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한국어 교육만큼은 전문가 집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여러 대학에 국어상담소 등 한국어 교육을 위한 전문가 집단이 구성돼 있고 한국어 교사 유자격자와 경험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지방 문화원도 다양한 문화강좌를 해 온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풍부한 자원과 능력을 도외시한 채 인구 몇 명에 시설 몇 곳, 시간 채우기 식 강좌 개설, 또는 여성인권 측면에서만 접근하려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어 교육의 목표는 수요자, 곧 한국인이 되려 하거나 한국에 오래 거주하려는 외국인에게 맞춰야지 공급자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맞춰서는 안 된다. 사회통합 교육을 보면, 교통이 불편한 벽지에 살고 있거나, 임신·출산·육아 등의 사정이 있는 결혼 이주민도 몇 달씩 또는 반 년씩 일정한 강의실에 앉아서 강의를 듣도록 요구하는데, 이런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또 수강자들은 각각 언어도 다르고 수준도 천차만별인데 과연 이런 식의 한국어 강의가 제대로 진행이 될지, 그 강의의 수준이 보장될지도 의문스럽다.

행정의 본질은 서비스 제공에 있고 서비스 제공은 사람을 돕는 데 의의가 있다. 사회통합 교육에는 수요자의 편의를 고려한 이주민 가정 방문교육 방식이 도입돼야 하며, 수강자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는 평가방법도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예산 투입에 걸맞은 성과를 담보할 수 있다.

이광석/경북대 법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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