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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1 18:12 수정 : 2008.01.01 18:14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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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십이지간지의 시작이라는 쥐의 해이다. 고사에 보면 꾀 많은 쥐가 소의 등을 타고 와서 맨 먼저 신 앞에 도착해 첫 동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신의 선착순’이라니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아마도 동물 중 생태계의 가장 하층구조를 굳건히 받치고 있는 관계로 이 점을 높이 산 신이 그처럼 큰 지위를 내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우리 고사에서도 그렇지만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쥐는 지혜롭고 영리한 동물로 통한다.

한편으로 쥐는 추악함이나 어둠을 상징하기도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어둠과 쥐는 항상 병존하지만 쥐가 꼭 극야행성 동물인 것만은 아니다. 이 어둠의 의미에는 전쟁·기아·전염병과 같은 음습한 이미지도 깃든다. 14세기 중세 유럽에 창궐했던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 원흉으로 지목받았던 게 바로 그 당시 불결한 환경과 더불어 살던 쥐들이었다. 사실 쥐들 역시도 페스트의 희생자였고 단지 쥐에 빌붙어 살던 전염력을 가진 쥐벼룩이 죽은 자기 숙주를 서둘러 떠나면서 숙주를 가리지 않고 옮겨 붙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 현상은 유럽의 비대화한 도시와 인구과잉으로 기인한 것이었지 결코 쥐의 탓만은 아니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새마을 사업의 하나로 쥐잡기를 독려했다. 삼십대까지는 기억이 없지만 조금 더 나이 든 연배는 누구나 쥐꼬리 검사를 받은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심지어 꼬리를 만드는 절묘한 비법까지 무용담 삼아 자랑한다. 검사하는 선생님들도 전쟁터에서 적장의 수급을 확인하는 듯한 곤혹스러움에 몸서리치셨을 것 같다. 그러니 그 정도 속임수는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셨을 것이다. 정말 국민계몽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쥐잡기 운동에도 모든 것을 쥐 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편리한 생각이 엿보인다. 곡식을 대충대충 보관하지 않고 음식물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쥐의 자연발생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해당 동물을 적대시하는 안하무인적인 습성을 키워왔다. 만일 쥐가 없다면 인간생활이 약간 더 편리해질지 모르지만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는 생태계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고스란히 먹이 피라미드 구조가 붕괴돼 버린다. 조물주는 쥐에게 놀라운 번식력과 진취적인 모험심을 주어서 지구상 모든 육식동물에게 풍부한 먹잇감을 제공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신이 준비한 자연의 군량미인 셈이다. 또한 온갖 잡스러운 것을 모두 먹어치워 주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까지 병행하고 있다. 쥐가 그렇게 밉다면 식량과 청소부 없는 우리 생활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쥐는 어떤 측면에서 인간들에게 매우 각광을 받고 있다. 모든 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기초적인 생물학적 안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주 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 쥐는 실험에서 살아나도 최종적으로 온몸을 해부당해 내장까지 확인시켜 주고 생명을 끝낸다. 쥐의 값진 희생이 없이는 어떤 약물도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다. 정말로 우리가 이렇게까지 특정 동물을 희생해 가면서 약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는 분명 재고해 볼 문제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들의 희생이 절대적이다.

쥐들은 이처럼 온갖 희생양이 되면서도 날로 번성하고 새로워진다. 쥐는 최초의 포유류로서 인간 훨씬 이전부터 있었고,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동물임에 틀림없다. 지진을 예측해 맨 먼저 집을 빠져 나가는 동물, 쥐들의 이 놀라운 생명력으로 지구 역시 싱싱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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