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1 19:13
수정 : 2008.01.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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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탁/(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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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 1월1일, 최요삼 선수가 생전에 장기 기증을 하려 했다는 사실이 가족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챔피언의 회생을 바라던 온 국민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던 그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는 올해로 119회를 맞은 새해맞이 행사 로즈 퍼레이드가 열렸다. 행사 한가운데에는 장기 기증인을 추모하는 꽃차가 섰다. 이 꽃차의 한 곳에는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헌화한 장미꽃 두 바구니도 있었다.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아름다운 얼굴들이 담긴 사진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 이 꽃차 위에 탄 사람은 뇌사 기증인의 유족들과 뇌사 기증인한테서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 그들은 기쁜 축제의 현장 한가운데서 웃는 얼굴로 얼싸안고 새해를 맞은 감격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귀한 선물을 선사하고 떠난 기증인을 추모하며, 장기 기증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뇌사 판정 후, 기증할 수 있는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생을 마친 최요삼 선수. 이제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를 향한 온 국민의 추모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그의 장기 기증 소식이 알려지면서 장기 기증 등록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과연 이런 열기가 얼마나 갈까? 아직도 기증되는 장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기만 이식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환자들이 속절없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
선진국의 장기 기증 체계는 해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장기 기증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을 제외한 전 국민을 ‘잠재적 기증자’로 간주하는 ‘옵트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살아 있을 때 기증 의사 철회가 가능한 만큼 기증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후 또는 뇌사 때 가족의 동의 없이 기증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제도화한 나라도 많다. 장기 기증 등록률을 높이고자 의료보험증이나 운전면허증 발급 때 기증 의사를 물어 표시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국가적 노력과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등은 국민의 70∼80% 이상이 장기 기증 희망자이며, 뇌사 때 장기 기증률도 인구 100명당 30명에 육박한다. 현재 국민의 0.8%만이 장기 기증 등록자이며, 뇌사 때 장기 기증률도 인구 100만명당 3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실정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장기 기증은 사람이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또한 장기 부전 환자 치료에 투입되는 의료경비를 절감시킬 뿐 아니라, 병상에 누운 환자에게 건강을 선사해 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로 만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장기 기증은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특별히 더 필요한 분야다. 장기 기증 활성화는 유명인 몇 사람의 모범적인 실천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국가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한, 그 어떤 감동적인 사연도 일시적인 주의 환기에만 그치기 때문이다.
축제 현장 한가운데를 달리던 ‘장기 기증’ 꽃차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꽃차를 향해 환호를 지르며 손을 흔들어주던 거리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생전에는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을 뿐인 뇌사 기증인들이지만, 그들은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그래서 유족들도 슬픔을 이기고 웃는 얼굴로 먼저 떠난 가족을 추억할 수 있었다. 기증인과 이식인의 만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증인과 이식인의 의사에 따라 만남을 주선하는 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규제 일변도의 장기 기증 관련 법규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최요삼 선수를 보내며, 장기 기증인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좀더 효율적인 장기 기증 체계가 조속히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진탁/(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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