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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5 18:58 수정 : 2008.01.15 19:50

문성원/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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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펴면 연일 새로운 교육정책 이야기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예정돼 있는 정부 부처의 하나가 교육인적자원부라고 한다. 이에 새로이 출현하게 될 교육정책에 많은 사람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쪽이나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쪽이나 바라는 것은 분명 ‘더 나은 교육 환경’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혹시 우리들 모두 너무나 당연히 ‘교육=학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사람의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조차도 외면하고 이뤄지는 행태들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방바닥을 기어다닐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네 살 때부터 다양한 입학시험들을 치르기 시작하는 요즘 아이들은 분명 과거의 아이들보다 배우는 것도 많고 아는 것이 많다.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하나라도 덜 배울까봐 늘 촉각을 세우는 학부모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최대한 활용하는 무궁무진한 사교육 시장 덕에, 모든 아이들은 ‘영재’로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글로벌 영재들로 넘쳐나는 우리나라가 자살률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을 기록한다는 점과 교육보다 보호가 더 중요한 나이의 어린 아이들조차도 ‘교육’으로 정상적 발달과 안전을 상당부분 희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운전을 가르칠 때는 빨리 달리는 법뿐만 아니라 멈추는 방법도 알려줘야 사고를 피할 수 있듯이,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점수 잘 따는 방법뿐만이 아니다. 화가 날 때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패배의 순간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외로움은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반드시 배워야 하며, 어떠한 일이 어떤 이유로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는 능력도 필수적으로 배워야만 한다. 시험에 나오기 에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말 최소한의 것이기에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갓난아기의 하루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미취학 어린이들의 일상은 너무도 지나치다. 필수 생존기술을 배우기는커녕 아이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호조차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직 엄마 품도 채 못 떨어지는 어린아이들이 고액의 수업료를 내고 질낮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하루를 보내도, 학부모 동의도 없이 무자격자가 함부로 지능평가를 해도, 자기 힘으로 용변 뒤처리도 못하는 나이의 어린아이들이 정체불명의 숙박 캠프에 끌려가도, 안전관리가 의심스러운 노란버스에 아이들이 실려 다녀도, 현란한 교육적 목표로 포장만 잘 되면 된다.

차기정부의 교육정책에서는 ‘자율’이 중시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정책적 전환의 여파가 성인의 보호가 절대적인 네살배기, 다섯살배기들의 일상을 지금보다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없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하루를 보내는 시설의 소관 부처가 어디든, 적어도 영유아 시기만큼은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우리 사회 두루 ‘합의된 기준’ 아래 무조건적인 보호를 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서적 발달도, 도덕적 발달도, 사회적 발달도 모두 박탈된 채 이뤄지는 지식적 교육은 폭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교육정책 변화는 이런 것들을 두루 고려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성원/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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