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8 18:58
수정 : 2008.01.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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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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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 ‘대통령소속 인권위’의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청와대의 방침과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요 사안에서 대통령의 의중과 정책을 거스르는 결정이 나올 경우 청와대는 집행부의 무능력과 비협조로 해석할 것이다. 따라서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은 혹시라도 자살골을 먹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인권위원 단속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소속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은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행정부 인사들과 자연스레 어울릴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면 팽팽한 긴장 속의 건강한 협력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유착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행정부 동료들의 장래에 누가 되지 않도록 될수록 비판 수위를 낮추게 될 것이다.
복잡할 것 하나도 없는 이치다. 상식적으로도 대통령 소속 인권위보다는 무소속 인권위가 대통령에게 좀더 자유롭지 않겠나.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인권침해 법령과 관행의 개선조치를 권고하는 일종의 악역을 대통령 소속 인권위가 잘 할지, 아니면 무소속 인권위가 잘 할지는 너무나 답이 뻔한 것 아닌가. 현재 청와대는 인권위에 대해 어떤 공식보고도 요구할 권한이 없다. 행정부 인사들과 마구 섞어 줄을 세우거나 평가할 수도 없다. 행정부 바깥의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이라크 파병 문제, 비정규직법안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결정적인 사안에서 정권과 엇박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100% 무소속 위상 덕분이었다. 국제적으로 높은 평판과 신뢰를 얻게 된 것도 이런 사안에서 보여준 실질적인 독립성 덕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수위가 인권위의 무소속성을 문제 삼는 것은 느닷없고 위험하다. 2001년 2월23일 한나라당이 소속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무소속 인권위법안을 제출한 사실이 말해주듯이 한나라당은 무소속 위상을 공식당론으로 채택했다. 당연히 법안 심의 과정이나 지난 6년의 국회 보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소속 위상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은 없다.
이렇게 볼 때 무소속 인권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바꾸겠다는 인수위의 방침은 무지의 소산이기 쉽다. 그렇지 않고 인권위를 이른바 진보정권의 전진기지이자 보수정권의 눈엣가시로 여기는 반인권 정서에 바탕한 개편안이라면 그것은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칫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주장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되면 인수위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든 셈이다.
당연히 인권시민사회는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발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국제인권사회 역시 가만있지 않을 태세다. 이미 18일자로 루이스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이경숙 인수위원장 앞으로 강력한 항의와 경고 서한을 보냈다. 그럼에도 인수위가 강행조짐을 보이면 인권고등판무관은 즉시 한국에 대해 조기경보시스템을 발동하고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인권위를 특별등급심사 대상으로 지정하고 독립성을 상실한 무자격 인권위로 판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인권위와 한국정부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쌓아올린 높은 평판과 위상을 모두 잃게 된다. 더 끔찍한 것은 국제인권사회가 이런 시도 자체를 정권교체 때 인권위의 독립성을 뒤흔든 나쁜 사례로 기억하며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명박 당선인을 국제사회에서 이런 민망한 사례의 주인공으로 영구히 기억되게 할 생각이 없다면 인수위는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화 방침을 지체 없이 거두어야 한다.
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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