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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1 20:04 수정 : 2008.01.21 20:04

정회성/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

기고

아들이 둘 있는데 아내가 두 아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대학생인 첫째는 우리가 요구하는 최소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어 모자 간의 충돌이 별로 없다. 둘째는 중학생인데 아직 어려서인지 컴퓨터 게임, 자세, 공부방 관리, 식습관 등등으로 충돌이 잦다. 최근 훈계와 설득에 한계를 느낀 아내가 행동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지키면 상점을, 어기면 벌점을 줘 월말에 정산하도록 했다. 용돈 차감의 벌금을 안긴 결과 자기의 잘못된 행위에 책임을 지게 된 둘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다.

최근 인수위에서 정부 규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새롭게 일고 있다.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삼으면서 정부 규제의 대대적인 완화가 거론되고 있다. 원래 정부 규제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이익이 사회적인 공공복리를 위한 요구조건과 다를 때 공공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그러나 기업이 지켜야 할 공적 이익은 기업이 추구하는 사적 이윤과 상치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규제 준수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런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의 충돌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인간사 중에서 환경보전만큼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의 충돌이 심한 것도 없을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에 환경을 마음대로 이용하게 하면 이들은 편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여타 사회구성원들은 오염된 환경으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와 건강상의 피해를 감수해야 되고, 생태계나 자연경관이 훼손될 경우에는 그 영향이 멀리 우리 후손에게도 미친다. 환경 파괴에 따른 피해는 대부분 여성, 어린이, 저소득자, 노인 등 이른바 환경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환경 피해에 노출되기 쉽고 피해 영향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대상으로 배상을 받는 데도 정치적·경제적으로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태안 기름오염 사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대형 환경사고로서 직접적인 책임보다 행위방법 규제에 치중한 우리 해양환경정책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우선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한국 대표 기업이 최소한의 환경안전기준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규제완화 또는 자율규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수자원의 보고이며 서민을 위한 국내 최대의 휴양지이자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희귀한 생태자원의 보유지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피해는 앞으로 수십년간 계속돼 천문학적인 사회적 손실을 볼 것으로 분석된다.

그 피해는 최근 피해지역의 가난한 어부들이 잇따라 자살한 것에서 보듯 지역주민,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피해에 대한 책임을 사고 당사자에게 충분하게 묻기에는 우리의 환경책임 법제가 너무 취약하다. 아마도 이번 사고가 초래한 피해 비용의 많은 부분이 사고 책임자한테서 보상받지 못하고, 세금을 내는 일반국민과 경제적·건강적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 특히 환경 취약계층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이런 모순을 피하려면 오염자 부담 원칙을 확대하고 환경책임 법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환경 오염자의 무과실 책임을 강화하고 그 책임의 범위에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물론 간접적인 경제손실과 환경생태적인 피해도 포함시켜서 배상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환경정책의 집행효과를 높일 수 있고, 환경 취약계층과 후세대를 보호해 사회정의도 구현할 수 있다.

새 정부의 환경정책은 환경책임 법제의 강화를 전제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환경규제는 개선해 나가면서 환경보호에는 상을 준다는 대원칙 아래 설계되고 운영돼야 할 것이다.

정회성/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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