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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록/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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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인가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인가를 받은 대학들은 정원이 적다며 불만이다. 인가를 받지 못한 대학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수들이 궐기대회와 거리시위에 나섰고, 지자체와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이 성명을 발표했으며,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등 소송사태도 예고되고 있다. 심지어 지역 정서나 특정 종교에 기댄 ‘정략적 음모’론까지 등장하는 지경이다. 이들 불만과 반발에는 그나름 이유가 있다. 신청한 인원에 비해 턱없이 적게 배정된 정원으로는 로스쿨의 취지에 부합하는 다양하고 심도 있는 교육을 하기 어렵다. 로스쿨의 재정 압박이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충분히 있다. 법학교육을 개혁하자면서 기존 사시 합격자 배출 실적을 기준으로 내세워 대학 서열을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물론 이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법학교육위원회도 일정한 방어 논리는 갖추고 있을 터이다. 총 132항목에 이르는 100쪽 가까운 상세한 인가심사 기준과 시범 강의까지 곁들인 현장 실사 결과라는 ‘방패’가 있다. 로스쿨법 시행령에는 “지역간 균형을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못박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과 지역, 광역시와 도, 국립대와 사립대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는 이 ‘합리적 설득력의 위기’ 상황은, 합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률가를 양성할 기관인 로스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준을 다 충족시켰는데도 왜 인가를 하지 않는가, 왜 충분한 정원을 배정하지 않는가라고 추궁하는 데는 도저히 설득력 있는 답을 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애당초 이 사태는 법학교육위원회의 ‘미세 조정’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총입학정원이라는 대한민국 로스쿨 특유의 잘못된 틀이야말로 근본 원인이다. 인가신청도 받기 전에 총입학정원을 2000명으로 묶었는데, 총 신청정원은 3960명이나 되고 보니, 아무리 고민하고 어떤 근거를 내세우더라도 인가 결과가 ‘무리한 줄세우기’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총입학정원을 2000명으로 정한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해 10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국회 보고를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밝혀진 것처럼, ‘법조가 그렇게 원하기 때문에’라는 것이 유일한 근거다. 총입학정원이라는 제도는 애당초 왜 생겨난 것인가? 2004년 9월 법조(대법원)가 처음 제안해서 법률로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니 결국 지금의 사태는, 법조가 만들어 놓은 진흙탕 속에서 온나라가 갈기갈기 찢겨 한바탕 허망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모든 분야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율에 맡기고 철저히 지원하는 도우미 정부를 지향”하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를 꾸리고 있다. 그 공언대로라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숫자 통제로 대학의 자율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로스쿨 총입학정원 제도야말로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로스쿨법을 개정해서 총입학정원이라는 잘못된 ‘규제’를 없애야 한다. 그래서 기준을 충족시킨 대학이면 어느 대학이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그 능력만큼 많은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로스쿨을 둘러싼 이 허망하고 ‘비법적’인 소동은 끝낼 수 없다.김창록/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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