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9 20:06
수정 : 2008.02.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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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원광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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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식량 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식량 수출국이 주는 대로 먹어야만 한다. 어쩌면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우리나라 전분당협회가 당당하게 밝히기를, 5월부터는 옥수수 전분 수입 전량을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로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낮으니 주된 수출국인 미국에서 재배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 발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먹어도 후세 대대로 안전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10년 동안 재배하고 소비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까? 광우병은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먹인 지 10년 만에 소한테 나타났고, 20년이 지나서 사람한테 나타났다. 그리고 광우병에 걸린 대부분이 태어나서부터 동물성 사료로 키운 소를 먹어 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사람들이었다. 지금 금방 나타나는 문제만을 기준으로 삼는 안전성 평가는 분명 충분하지 않다.
또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금 식량은 지구 인구가 필요한 양의 1.5배가 생산되고 있는데도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분배 문제라고들 말한다. 분배가 아니라 절대량이 문제라도 유전자 조작은 식량의 해결책이 아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식량 부족을 해결하려면 같은 면적에서 훨씬 더 많은 생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증산과는 무관하다. 가장 많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심은 미국에서조차 그 덕에 엄청나게 생산량이 늘었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식량 부족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은 농지의 사막화나 농지의 공업용 전환 등이 더 큰 문제다. 그런데도 굶어죽는 것보다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라도 먹는 것이 낫다? 이것은 분명 미국의 생각이다. 미국은 이미 2002년에 아프리카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식량으로 원조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아프리카 나라들 대부분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은 그 화살을 유럽연합에 돌렸다. 유럽연합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반대하니 아프리카까지도 거부한다면서 빨리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태도를 바꾸라고 압력을 가했다.
안전성과는 별개로 옥수수 전분을 수입해야만 하는 이유도 한번 따져보면, 사실 우리는 옥수수 전분이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옥수수 전분이 주로 사용되는 식품은 바로 아이들이 먹는 과자이고 음료수이기 때문이다. 옥수수 전분 값이 비싸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결론은 ‘그래? 그럼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수입하지’가 아니라 ‘그래? 그렇다면 옥수수 전분 소비를 줄여야겠다’여야 하지 않을까. 몇 해 전 스타링크 사건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재배하지 않는 나라에서 옥수수를 수입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브라질이다. 옥수수 원산지인 중남미 국가들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말미암아 자국 옥수수의 고유종들이 오염될 것을 우려하여 재배를 꺼린다.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옥수수를 수입할 수 있는 길은 아직 있다. 양이 문제라면 과자나 음료수를 덜 만들고 옥수수 전분으로 만드는 과당이나 올리고당 등의 소비를 줄이면 된다.
새 정부에서는 미국말이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것이 애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앞으로 외국산이 아니라 국산 농산물을 먹는 것이 애국이라는 유머가 생길 법하다. 그 애국은 어렵지 않다. 바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은진/원광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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