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03 21:43
수정 : 2008.03.0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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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윤/아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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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발표한 몇몇 논문들이 표절 또는 자기표절(중복게재)한 것이라는 언론 보도는 표절 기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다. 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자신의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중복 게재하고, 이런 논문들을 국가지원 사업에 성과로 보고하는 행위는 교육자가 학생들 앞에서 절도와 사기를 일삼는 심각한 행위다. 이는 교수로서 가져야 할 기본 윤리조차 결여하고 있다고밖에 평할 수 없다.
인수위는 수십 문장이 동일한 논문에 대해서 2차 분석이 달라 표절이 아니라는 궤변으로 국민들을 기만해 왔다.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겠지만, 대학 총장과 여러 교수들이 참여한 인수위가 ‘표절 수석’을 옹호하려고 궤변을 늘어놓는 행위는 국가 차원에서 학문 윤리 기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심각한 일이다. 인수위의 무책임한 한마디가 아직 갈 길이 먼 대한민국 학문윤리의 신뢰도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박미석 수석에 대한 표절 의혹은 증폭되었지만, 표절 행위가 “사회정책수석의 직무 수행에 결정적 결격사유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런 청와대 판단은 조직 내 직업 윤리의식이 얄팍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낸다. 게다가 “박미석 교수 논문 논란에 대해서 앞으로 청와대가 공식 입장을 통해 대응하지 않겠다”라는 청와대 발표는 국가 최고 권력기구가 요구하는 직업 윤리기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면, 누구나 대통령의 윤리의식과 자질도 다시 한번 의심의 도마 위에 올릴 수밖에 없다. 표절 교수를 발탁하고 고집하는 대통령의 행동은 대선 당시 경쟁 후보들이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자질에 관해 제기한 문제(‘자녀 위장취업’과 같은 행위)를 상기시켜준다. 또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의 존엄성을 중시한다면, 표절 교수를 감히 청와대에 입성시키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벌써 잃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주변 사람 모두가 직업윤리를 결여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 총장 출신의 인수위원장을 비롯해, 대학교수 출신의 대통령실장과 여러 수석 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보좌해 왔다. 그중 어느 한 사람도 표절 행위의 심각성과 표절 교수의 인사 문제에 관해 대통령께 직언을 하지 않았거나 또는 직언을 했지만 통제할 수 없었다면, 국민들의 우려와 실망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2006년 8월 한나라당은 이주호 교육문화수석을 앞에 내세워 김병준씨가 범한 표절을 문제 삼아 그를 교육부총리직에서 사퇴시켰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던 바의 요지는 학문 윤리가 정착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발전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미석 수석의 표절에 대한 한나라당의 자세는 김병준씨 경우와 비교해보건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적인 위선이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학문윤리를 정략적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학문윤리가 우리네 사회에 결코 정착될 수 없도록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육을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선진화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장담은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것이다. 정직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교육 기반을 구축할 수 없을뿐더러 선진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인류 문명사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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