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근 흙살림 회장
|
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된 2003년 이후 4년 만에 갈비를 비롯한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까지 전면적으로 수입하도록 한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은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는 말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국민 건강 문제를 외면하고 축산농가의 시름은 돈 몇 푼 집어주면 그만이라는 논리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장주의와 경쟁력이 최고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소를 키우는 농민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소비자인 국민이다. 미국의 허술한 광우병 대책은 우리나라의 조류독감에 걸린 닭의 대책과 크게 비교될 만한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검역시스템에 관한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검역 주권마저 포기하고 미국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쇠고기 동맹은 이 정부에 과연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광우병은 198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병했고, 그 원인은 육골분 사료 급여에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미국의 광우병 관리 대책은 전반적으로 허술하다. 미국 소 1억 마리 중 0.5%만 샘플조사하고 있고, 뇌·척수 제거는 30개월 이상만 하고, 육골분 사료를 제조 급여하고 있으며, 생산 이력제는 시행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일본의 대책은 100만 마리 전두를 검사하고 특정 검역부위를 제거하고, 육골분 사료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생산 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아직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우리나라도 일부 소는 검사를 하고 있고 생산 이력제도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뼈를 포함해 부위에 관계없이 전면 수입될 경우 그 피해는 바로 그것을 먹는 우리 소비자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인간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해 최종결과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건강권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데, 책임자의 자세는 너무도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단 1%의 위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차단하고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국정 책임자의 의무다. 사료가격 폭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소 사육 농가들에는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도축세를 없애고 고급한우에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대책은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새삼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 농지 다 없애고 연해주·만주를 개발해야 소용 없다. 그 땅은 우리 땅이 아니다. 마음대로 가지고 올 수 있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농민들이 농토를 떠나고 식량 자급률을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 외국 농산물 값은 비싸지고 있는데 더군다나 수입도 점점 어려울 텐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값싼 외국산을 들여오면 된다고 계속 거짓말만 늘어놓을 텐가.우리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소비자인 국민은 축산농가와 연결해 입식자금을 대주고 그 농가의 건강한 고기를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 국민이 희망이다. 기댈 것은 국민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국민에게 호소한다. 정부는 다시 한번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왜 농민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잘못 판단한 것이 있다면 과감히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서 살피길 바란다. 소도 안 잃고 외양간 고칠 일도 없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이태근 흙살림 회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