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안지영 아레나(아시아지역대안교류회) 간사
|
기고
“우리가 시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수도 없이 이 말들을 외치며 시위대보다 한없이 많은 전경들 앞에 마주 섰다.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이 순간만큼 절감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이 순간만큼은 국가권력이 만들려고 끊임없이 강요해 온 ‘국민’과 이에 저항해 온 ‘시민’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지난 몇 주, 촛불 앞에 섰던 우리는 배후세력이 조종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시민’이었다. 우리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 정부의 퇴진을 이야기하며, 대의민주주의의 모순을 시민 불복종이라는 직접민주주의로 극복하려 했던 시민일 뿐이었다. 물론 촛불을 들고 나온 이들이 대한민국 전체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입니다. 이는 불법 시위입니다”라고 말하는 전경에게 “우리가 시민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등에 업혀 나온 어린아이부터,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손을 잡고 나온 연인들,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분명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밤이 깊어질수록 시위 대열도 흐트러지고, 일부는 다음날의 생계를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다시 그들이 촛불을 들고 나올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에 당당하다. 하지만 가끔 촛불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온몸에 두른 모습에, 애국가를 눈물 흘리며 부르는 모습에 시민의 정체성과 배타적인 애국주의 혹은 국가주의 사이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시민으로서 국가 폭력에 저항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때로는 전체주의를 강요하며 또다른 폭력을 낳는 애국주의·국가주의 사이의 평행선을 어떻게 그을 수 있을까? 또한 전경들이 쿵쿵쿵쿵 방패를 찍으며 스크럼을 짠 시위대를 압박해 올 때, “남성분들 앞으로 나와 주세요”라는 절절한 목소리와, 선두에 있는 내 앞의 수많은 남성들이 “뒤로 빠지세요”, “위험해요”, “우리가 지킬게요”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나는 우리가 여성이고 남성이기 전에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이고, 방패에 찍힐 때의 아픔은 여성과 남성에게 똑같은 것이기에 뒤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물러나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메워야 함을 알기에, 그리고 나에게 쏟아질 폭력이 고스란히 그 자리를 메운 사람에게 갈 것을 알기에 뒤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싸움에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 국가 폭력에 저항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그리고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눠야 한다. 우리가 두른 태극기가 혹시 촛불집회에 함께 나온 이주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배타적 애국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은 아닌지, 또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재생산·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굳건한 의지로 한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에게 감동하면서도, 그 안에서 혹시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시민이다”라고 외치는 이유이다. 이안지영 아레나(아시아지역대안교류회) 간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