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5 20:12
수정 : 2008.07.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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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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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시민들이 특정 신문들의 광고주들에게 전화를 걸어 광고계약을 해지하도록 독촉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독촉하도록 촉구하는 행위에 대해 검찰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히고 출국금지 조처까지 했다. 위 행위에 적용하려는 죄목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정도일 터인데, 그러한 처벌은 위헌이 될 것이다.
소비자가 회사에 제품의 질을 높이도록 촉구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구매 혹은 불구매 의사를 밝히는 것은 소비자의 고유한 권한이다. 또 구매 여부의 조건에는 그 기업 행위의 경제, 인권, 노동, 환경적 결과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일부러 업무 마비를 위해 전화를 불통시킨다거나 구매 의사도 없으면서 청약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비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과 거래하는 것, 또 자신이 선호하는 기업의 조건과 그 조건의 근거가 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업에 밝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이며 소비자의 권리다. 소비자가 자신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따라 요구사항을 기업에 밝혔을 때 기업이 소비자 만족을 위해 기업 행위를 변경한 것을 ‘위력’이라고 한다면, 그 기업은 당해 소비자에게 애용되어야 할 ‘특권’이라도 있다는 뜻인가.
위 행위를 광고주에 대한 업무방해가 아니라 일간신문들에 대한 이른바 ‘2차 불매운동’으로 규정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검찰이 처벌의 근거로 언급한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2차 불매운동’ 금지법제는 소비자들의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
도리어 2차 불매운동 금지제도는 바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공정거래법적인 이유로 만들어졌다.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공정한 경쟁을 외면하고 자신의 지배력에 의존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 하거나 여러 사업자들이 담합하여 그와 같은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에 의한 2차 불매운동은 갑이 을에게 “병과 거래를 하면 당신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갑이 을에 대한 시장지배력을 이용하거나 을과 담합하여 자신의 경쟁자인 병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금지되는 것이다.
또 영미권에서는 노동조합 발생 초기에 ‘노동조합도 노동자들의 담합이므로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논란이 있었다. 물론 결론은 노동자에게 고유하게 보호되는 사회권을 이유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노조의 파업행위만큼은 집단적인 경제력의 행사이므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반영되어 명시적으로 2차 불매운동 금지가 법제화되었다.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2차 불매운동 금지 규정인 상거래행위법 45조는 기업들과 노동조합들에만 적용되고 소비자들의 2차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예외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노사관계법인 태프트-하틀리법의 8(b)(4)(ii)(B)조와 공정거래법인 셔먼법이 노조들과 기업들의 2차 불매운동을 각각 규제하는데, 전자는 노동조합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후자 역시 판례를 통해 기업들에만 적용될 뿐 소비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도리어 미국에서는 소비자의 2차 불매운동이 건강한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법원들과 학자들이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노조들이 환경 및 사회운동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다.
검찰이 이번에 배운 ‘2차 불매운동 금지’ 법리는 대기업들이 소규모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벌이는 2차 불매운동을 단속하는 데 응용한다면 공정한 상거래를 바라는 기업가와 소비자들 모두의 칭송을 얻을 것이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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