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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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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얼마 전까지 서울의 심장이었던 시청사의 문이 지난 6월8일 굳게 닫혔고, 곧이어 새 청사와 함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새 청사와 함께 새로 선보일 옛 청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시는 서울을 대표할 새 청사를 건립하면서 옛 청사를 꽃단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문제는 초기 안이 역사 경관을 훼손시킨다는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폐기되고, 새롭게 안이 마련되었지만, 지금 디자인이 문화재인 옛 청사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주 출입구와 태평홀을 비롯한 중요한 곳곳이 온전히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옛 시청사의 훼손은 문화재 가치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옛 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건립되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친일’과 ‘빨갱이’라는 두 단어가 갖는 파괴력은 여전하다. 그래서 일제 잔재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구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역사적 건축적 의의가 큰 해방 전 건축물들이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사라졌지만, 개발자들이 예외 없이 돈을 위해 근대 문화유산을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치욕의 역사를 지운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은 이러한 세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수난의 역사를 증거할, 그리고 수난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증거할 현장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철거를 통해 우리의 역사의식이 더욱 강건해졌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다. 사라진 역사의 현장은 교훈마저 기억 저편으로 소멸시키고 만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화재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문화재에 담긴 문화와 동시에 역사를 길이 남기기 위함이다. 역사 현장의 보존에는 문화재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교훈이 중요하다. 옛 청사는 일제 강점 아래서 20년을 지냈지만, 우리와는 6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 왔고, 서울에서 역사 공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식민지에 대한 교훈뿐 아니라 해방의 기쁨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부모 세대와 우리가 공유하는 역사의 중심에 옛 서울시청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옛 청사의 문화재·건축물로서의 가치를 폄하하는 이도 있지만, 근대건축물은 전통시대의 나무 구조를 대체하며 시대의 총아로 등장한 철근콘크리트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지어졌고, 그렇게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옛 청사는 서양의 역사주의 건축이 근대주의 건축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증거하는 몇 남지 않은 중요 건축물일 뿐 아니라, 근대 서울의 핵심 공간이자, 역사문화 공간의 중심에서 다이내믹한 한국의 성장을 지켜본 건축문화재다. 근대 문화유산은 전통 문화유산과 달리 가치평가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가치가 형성 중인 문화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치 형성의 주체가 바로 우리라는 점이다. 근대 문화유산은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이야기한다. 당대의 논리로 보존된 문화유산의 향유는 다음 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이제 ‘옛 청사에 무엇을 담아서 다음 세대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새 청사 기공식에서 “신청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100년 후에도 서울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을 짓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지만, 그런 의지가 옛 청사에 상처로 남아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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