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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8 19:14 수정 : 2008.07.18 19:14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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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테 또 한방 얻어맞았다. 일본 정부는 중학사회과학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고, 새 학습지도요령이 시행되는 2012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년부터 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수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으면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우의’를 다짐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뒤통수’를 치는가, 민족적 분노를 삭이기 어렵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예의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휴가를 떠나버리고 한국 조야는 울분에 차서 빈주먹을 날린다. 이번에 일본은 독도문제를 또 한단계 격상시켜 ‘러시아가 점령한 북방4도’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갈 데까지 가는 것 같다. 일본이 독도에 집착한 것은 한국 침략에 대한 ‘야심’과 ‘망상’을 버리지 않아서다. 정부는 일본의 의도를 꿰뚫고 한-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라는 후쿠자와 유기치는 1885년 3월16일 <시사신보> 사설에서 “중국과 한국을 상대하는 방식에서 이웃나라라고 하여 특별히 동정할 것까지 없다. 악우(惡友)를 좋아하는 자는 함께 악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아시아 동방의 악우를 사절한다”고 썼다. 한국과 중국을 ‘악우’라고 표현하면서 ‘탈아입구론’을 폈다.

그 무렵(1890년) 야마가타 아리토모 수상은 제1회 제국의회 시정 연설에서 “일본의 국방상 안전을 위해서는 이익선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익선’이란 국가통치권이 미치는 주권선과는 별개로 한반도를 이익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로부터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 직전에 시마네현의 고시를 통해 불법적으로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것은 러-일 전쟁에서 독도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러-일 전쟁 때 일본은 독도와 울릉도에 망루와 한국-독도-일본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는 등 독도를 군사기지로 이용했다. 결과는 약세이던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함대를 격파시키고 전쟁에서 이겼다.

이후 일본은 독도를 더욱 전략적인 요충지로 여기게 되었다. 독도를 점거하여 첨단 군사시설을 갖추게 되면 남북한, 중국, 러시아, 미해군의 동향을 한눈에 살필 수가 있다. 동해가 일본 해군의 앞마당이 되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넘보는 배경 중에는 군사전략과 더불어 경제적 이익도 계산한다. 이미 지난 20여년 동안 독도 인근 해저에 매장된 엄청난 량의 광물자원을 탐사했다. 또 독도 근해는 한류와 난류가 겹치고 있어 어족자원이 풍족하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8도를 명나라와 양분하려던 책동을 시작으로 1800년대부터 한반도를 자국의 이익선으로 설정하면서 틈만 나면 분할점령 또는 단독 지배를 시도했다.

지금 북핵 관련 6자 회담에서 가장 강경노선을 택한 나라가 일본이다.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자국의 이해에는 가장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펴놓은 멍석에 남북한이 놀아나는 형국이다. 일본은 진정한 ‘우방’인가 ‘악우’인가 헤아릴 때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함께 편찬한 역사 교과서에서 ‘임나일본부설’ 즉 한반도 남쪽에 임나라는 식민지를 경영했다는 역사왜곡을 필두로 역사를 날조하고 이를 바탕 삼아 한국을 침략했다. 독도를 첫 먹이감으로 삼았고 지금 다시 새로운 도발을 시도한다.


독도는 우리 생명선이고 국토의 최전선이다. 우리의 주권선이고 헌법 영토조항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명시된 영토다. 정부는 이 기회에 북한에 남북이 함께 독도수호에 나설 것을 제의하여 한민족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라. 동족에는 야박하고 외세에는 비굴한 모습이 일본의 야심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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