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6 19:11
수정 : 2008.08.2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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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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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끝난 뒤 결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특히 전교조 내부 토론과정에서 ‘집토끼’와 ‘산토끼’에 대한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는 현 정세를 판단하고 향후 교육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번 선거는 전체 25개 선거구 중 17개 지역에서 승리했음에도, 강남 몰표 때문에 2만표 차이로 주경복 후보가 패했다. 강남 몰표를 두고 의견이 갈라진다. 집토끼론자들은 주 후보가 교육평준화 정책을 적극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실망하여 이탈했다고 보는 반면, 산토끼론자들은 부동층이 주 후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 무관심으로 남아 있었다는 해석을 내린다. 사실 선거결과를 두고 패인을 단 한 가지로 단정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태도이다. 따라서 선거 평가는 매우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 검증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학술적인 개념틀이 동원되어야 한다.
필자는 집토끼와 산토끼에 대한 전교조의 의견대립을 두고 다음과 같은 학문적인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한국 현실에서 교육문제에 관해서는 유권자의 심리상태를 중층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론조사에서 교육평준화에 지지도를 보이는 학부모들이 막상 자기 자식이 특목고에 입학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특목고 폐지에 반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육문제를 두고 학부모의 정치적 태도는 늘 이중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정신분석학의 성과에 기대어 보면, 민중계급의 사회적 정체성은 대타자(부르주아 계급)를 전제로 해서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며, 따라서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정치적 표현도 양가적이다. 겉으로는 교육평준화를 외치고 살인적인 경쟁논리를 비판하지만, 내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를 들어갈 수 있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에 보이는 수치가 전부가 아니다. 통계에 따라 선거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공정택 후보는 주 후보가 전교조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하면서 엄청난 전술적 효과를 얻어냈다. 언론에서도 주 후보의 공약은 현 교육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부동층에게는 주 후보가 대안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비쳤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문제를 두고 보수층의 헤게모니가 확산되어 중산층뿐만 아니라 서민층의 가치관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자식의 성공을 원하는 학부모들은 어떤 계급을 막론하고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상당히 길들여져 있다. 과연 어느 누가 성공신화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따라 교육평등화의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다. 더구나 지난 세월 보수언론은 엄청난 상징적 자원을 동원하여 보통사람들을 세뇌시켰고, 급기야 학부모들이 고교평준화를 고교획일화로 이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용어와 개념틀을 찾아야 한다. 세상이 바뀌면 보통사람들의 마음도 변화한다. 그것이 바로 지형의 변화이며, 이것을 포착해 내는 개념틀이 바로 프레임이다. 전교조의 프레임이 너무 낡아 버린 것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사회운동과 선거운동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전자가 옳음/그름을 기준으로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표를 얻는 것이 목표이다. 모든 선거는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추어 정책공약과 운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주 후보의 선대본이 과연 사회운동을 한 것인지, 선거운동을 한 것이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진보진영도 한 번쯤은 이기는 선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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