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8.28 22:49 수정 : 2008.08.28 22:58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기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25일 퇴근 무렵에 서울시청을 헐겠다고 문화재청에 통보했다. 문화재청은 26일 오전 9시께 철거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오 시장의 고집을 꺾기는 역부족이었다. 오 시장은 앞서 한국 근대체육 역사인 동대문운동장과 근대 환경시설인 구의정수장 철거를 감행한 바 있다.

서울시청은 서울역, 한국은행과 함께 서울의 3대 근대건축물이며, 특히 근대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성장한 서울의 역사요 상징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일제 잔재라며 철거를 주장하지만, 슬프고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문화유산은 ‘기념’할 것과 ‘기억’할 것으로 구분해야 한다. 서울시청은 ‘기억’의 가치가 충분한 문화유산이다. 보물로 지정된 삼전도비는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의 역사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역시 치욕의 역사이지만 보존하면서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서울시청을 굳이 철거하려는 명분은 무엇인가? 서울시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영혼 없는 일부 구조전문가들에 의해 ‘조작’된 ‘건물의 심각한 노후화’(D급, E급)와 ‘서울시민의 안전상 이유’로 철거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1996년 실시된 ‘서울시 청사 시설물 구조 안전진단 보고서’의 결과와는 상반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구조안전상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라고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얼마 전까지도 시청으로 사용해 왔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이 10여년 사이에 심각하게 노후화되어 철거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서울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건축문화재에 대해 현대적 건축 잣대를 적용하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의 주장대로라면 현존하는 우리나라와 전세계의 건축문화재는 모두 폐기물감이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내세우는데, 그동안 서울시청이 얼마나 자유롭게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었고, 또 어떤 면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는지 의문스럽다. 바로 얼마 전 서울시는 다양한 주체들의 공론장이었던 시청 광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수많은 시민들을 밀어내고, 시청과 광장에 접근조차 못하게 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시청 본관을 해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아무리 봐도 궤변이다.

오 시장은 서울을 디자인도시, 문화도시로 만들겠다고 수없이 약속했다. 서울시청 본관도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문화도시는 새롭고 화려한 건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적되어온 수많은 삶 속에서 역사·문화적인 맥락을 짚어내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서울이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며 진정한 의미의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 최소한의 조건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 것이 오 시장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진정한 ‘문화도시 서울’을 만들고 싶다면 이런 약속과 의무를 방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이 역사와 문화는 사라지고 거대한 건물들만 들어서 서울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이것은 ‘반문화적이고 반역사적인 도시 서울’로 가는 지름길일 뿐임을 오 시장은 알아야 한다.

또 서울시는 문화재청의 사적 가지정에 대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한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법적 대응을 모색할 시간에 서울시청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적 가치와 맥락을 공부하기 바란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