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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0 20:10 수정 : 2009.01.21 11:38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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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진 검찰총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친북좌익이념을 퍼뜨리고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지지도, 우익에 대한 반대도 위법이나 불법이 아니며 도리어 자유민주주의의 기둥인 사상의 자유가 보장하는 다양한 사상 중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 말은 “불교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외국의 어느 검찰총장도 “레프트”를 불법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검찰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헌법이 보호하는 사상을 가진 일부 국민들에 대해서는 “당신들의 자유와 재산을 뿌리째 뽑겠다”라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에 뿌리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인하는 말임은 물론 반헌법적이며 명백한 탄핵 사유이다. 물론 문장구조상 ‘발본색원’당하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기도 해야 하며 “사회 혼란도 획책”해야 하지만 이 문구들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상하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4·19 민주화운동은 단지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혼란’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인가.

물론 위 발언은 ‘불법필벌’의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같은 범법자들 중에서도 특정 집단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불법필벌’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바로 그 집단에 대한 공격이다. 허위사실 유포죄가 실제로는 정부에 비판적인 ‘미네르바’ 같은 사람들만을 처벌하므로 허위사실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정부 비판자에 대한 처벌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은 ‘좌익’ 또는 ‘친북’이 아니므로 검찰총장의 발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미네르바 구속사태에 비추어 조언하고 싶다. 자신이 다수에 속해 있다는 환상을 깨라. 100만개의 평이한 게시물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단 1개의 게시물이라도 현 정권에 위협이 될 정도로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고 처벌된다는 것은 100만개 모두가 처벌된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은 1월15일 시위 및 파업에 대한 구형 기준표를 마련하였고 1월4일에는 사이버전담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좌익’에 현혹되기 쉽다고 판단되는 힘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집회시위나 인터넷을 압박하여 우리 모두를 압박할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의 의미를 재검토하자. 우리는 대통령의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지는 못하여 그 아래에서 시녀 노릇을 하던 검찰에 일말의 양심을 기대하면서 이 문구를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독립성’은 정부의 민주화 의지와 검찰 개혁을 방해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심지어는 법무부 장관의 ‘무죄추정에 따른 불구속 수사’ 요청에 대한 방패막이로도 동원되었다. 결국 헌법이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원도 꾸준히 자기개혁을 진행하는 동안, 검찰은 한 번도 개혁의 수술대에 오르지 않았다.

검찰의 독립성은 누구의 통제로부터든 자유로운 ‘섬’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찰, 노조, 시민단체 모두 외부의 견제와 비판으로부터 격리되면 자기의 집단적 이익을 좇기 마련이며 결국 진정한 독립성을 잃게 된다. 결국 국민의 일부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반한다고 하여 이들을 공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독립은 자기로부터의 독립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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