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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9 19:53 수정 : 2009.01.29 19:53

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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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군포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소박한 꿈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던 20대 꽃다운 여학생이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용의자인 강아무개씨의 범행 수법과 범죄 인멸 방법은 치밀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때 가발을 쓰고 지문을 남기지 않은 점, 범죄에 사용된 차량을 모두 불태운 점, 그리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피해자의 손톱을 자른 점 등은 연쇄살인범의 대담한 수법과 유사하다. 실제로 경찰은 강씨의 네번째 부인과 장모의 화재사망 사건, 그리고 경기 남서부 일대에서 일어난 유사 사건과 연관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강씨의 이웃과 직장 동료들은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이 잔혹한 범죄자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계속해서 아무 일이 없었던 듯이 일상생활과 직장 근무를 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강씨는 수억대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형과 함께 수십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부인과 사별한 후 청소년인 두 아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처럼 보인다.

용의자 강씨는 반인륜적인 범죄 행각과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엽기 살인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고급 차를 몰던 부녀자들을 납치해 살해한 뒤 소각한 지존파 사건, 21명을 잔인하게 살인했던 유영철 사건, 안양 초등학생 혜진이와 예슬이 살해 사건 등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전형적인 사건에 속한다.

사이코패스는 1920년대 독일학자 슈나이더가 처음 소개했는데, 범죄, 성적 욕망, 공격성에 대한 통제력이 매우 부족하고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는 정신병질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 정신진단편람에 정의된 바로는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 기제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적,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다.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의 90%, 전 인구 중 1%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놀라운 것은 사이코패스의 특성상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일반인처럼 생활하지만 가면 속에 숨겨진 섬뜩한 범죄 본능이 움츠리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 반사회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과대망상적이며,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허구와 거짓으로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다.

이번 군포 여대생 납치살인 사건을 보면서 또 한 명의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예감하게 된다. 경찰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특성을 종합해 볼 때 그럴 개연성이 매우 높다. 흔히들 사이코패스를 현대인이 만들어낸 ‘악마’ 혹은 ‘돌연변이 괴물’이라고 한다. 아주 섬뜩한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정확한 치료 방법이나 대처 방법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산업 발전의 산물로 자연이 파괴되듯이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의 인간성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인간성의 회복에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다. 그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지워져 있다.

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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